대구삼성창조캠퍼스(이하 캠퍼스)에 삼성이 없다. 삼성의 창업정신을 알리는 전시공간은 문을 열지 못하고 있고 캠퍼스 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혁신센터)의 지원체계도 삼성 등 대기업 중심에서 지역 중견기업과 대학 등으로 전환됐다.
올해 국비가 줄었고, 다른 창업 관련 기관과 기능이 중복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박근혜 전 정부의 핵심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새 정부 창업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부족한 창업공간과 미흡한 성과
23일 정오 대구 북구 침산동 대구삼성창조캠퍼스. 사람들이 식당과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서 적당한 식당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몇몇 식당은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캠퍼스 남쪽 정문에 복원한 옛 삼성상회 건물(330㎡). 전시공간으로 마련된 이 건물의 문은 닫혀 있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1938년 대구 중구에 세운 삼성상회를 그대로 복원한 형태였다. 바로 옆에는 이병철 회장의 동상이 서 있었다. 길 맞은편에는 하얀색 건물의 제일모직 기념관(2천710㎡)의 입구도 닫혀 있었다.
이곳은 캠퍼스 내 4개 구역 중 하나인 '삼성존'(3천635㎡)이다. 그러나 2016년 말 캠퍼스가 준공한 이후 아직 개소식을 못하고 있다. 캠퍼스의 한 축이 사실상 개점휴업인 상태로 전시와 홍보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다.
캠퍼스는 지역의 '창업 허브'를 목표로 내세웠다. 하지만 '벤처창업공간'이 캠퍼스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건축 연면적 기준 캠퍼스는 3만6천474㎡ 규모다. 이 중 벤처창업공간(1만5천337㎡) 비중은 42%다.
하지만 사무실 임대공간인 벤처오피스(6천16㎡)와 행사공간인 컨벤션동(2천578㎡)을 제외하면 실제 창업 지원업무와 시제품 제작,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공간은 18.5%(6천743㎡)에 불과하다.
반면 '주민생활편익존'(8천462㎡)은 23.2%이다. 식당과 카페 등 상업시설로만 채워진 파크몰 A·B동이 창업 지원업무와 시제품제작 공간보다 더 넓다. 이외에도 식당과 편의점 등 상점은 컨벤션동(1층)과 벤처오피스(1층), 문화벤처융합존 등지에도 들어와 있다.
2014년 개소해 2016년 12월 캠퍼스로 확장'이전한 혁신센터의 성과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국회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5~2018년 6월) 창업기업 지원 실적은 전국 17곳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중 대구가 264개사로 부산(386개사)과 서울(330개사)에 이어 3위이다.
국비 지원을 비교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대구가 받은 국비 지원은 133억원으로, 부산(82억)보다 많지만 성과는 뒤진다.
◆삼성 역할 줄어든 혁신센터
무엇보다 캠퍼스의 브랜드였던 삼성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월 창조경제혁신센터 개편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대기업이 각 혁신센터를 전담해 지원하는 방식을 폐지하고, 지역의 중견기업과 벤처기업, 대학 등이 지원에 참여하도록 했다. 지역별 사정에 맞는 창업생태계 구축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취지다.
이로 인해 대구의 경우 협력파트너가 삼성 중심에서 지역 중견기업과 대학 등으로 재편됐다. 특화 분야도 전기와 전자, IoT, 패션에서 무인이동체와 로봇, 헬스케어, 스마트시티로 바뀌었다. 삼성과 관련한 분야에서 지역의 전략산업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대기업 전담제 폐지가 혁신센터를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른 창업기관과 차별화된 부분이 대기업과 연결해 창업기업을 육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섬유와 자동차 부품이 대부분인 지역 중견기업의 역량으로 창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삼성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파견한 직원은 기존 6명에서 올해 3명으로 줄었다. 삼성개방특허 관련 직원 1명과 실무지원 인력 2명이 삼성으로 복귀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개방특허와 관련된 '원스톱서비스지원' 사업 예산은 지난해 8천만원에서 올해 4천500만원으로 삭감됐다.
다만 창업기업 육성프로그램인 'C-LAB' 참여 직원은 2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5년 시작한 C-LAB은 1~7기까지 106개 팀을 배출했다. 이 사업은 국비 지원 없이 시비(3억9천500만원)로 진행되고 있다. 파견 인력 이외에 삼성의 지원은 C-LAB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한 청년벤처창업펀드(C-Fund)에 초기 출자한 100억원이 전부다.
지역의 한 창업기업 대표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해서 안정적인 규모로 성장하는 데 대기업이 가진 인적 자원과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새 정부 들어 전 정부의 사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대구의 이점이었던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약해졌다. 투자유치가 수월한 수도권에 비해 창업생태 경쟁력이 밀린다"고 말했다.
◆국비 감소와 기능 중복의 문제
창업기업 육성을 맡은 혁신센터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바뀐 뒤 국비 지원이 줄고, 정체성도 모호해졌다. 특히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한다는 명목으로 소셜벤처와 의료, 관광 등 애초 취지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을 맡게 됐다.
국비가 감소하면서 일부 사업 예산도 줄었다. 로봇융합기술 분야의 창업을 지원하는 '로봇창업 새싹인재 키움'은 지난해 4억6천만원에서 올해 1억원으로 78%나 감소했다. 창업기업의 디자인 역량을 키우기 위한 '글로벌디자인스쿨' 운영 예산도 같은 기간 2억4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58%가 줄었다. 창업자의 제품 제작을 돕는 'C-Fab'의 국비 예산도 5억6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축소됐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삼성창조캠퍼스와 혁신센터는 지난 정부의 핵심사업이었기 때문에 지금 정부의 창업정책에서 홀대받는 측면이 있다"며 "주축이었던 대기업이 빠지고 예산이 줄면서 창업 허브라는 목표가 흐지부지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의 다른 기관과 기능이 중복되는 점도 문제다. 대구테크노파크와는 사업 목적과 활동 방향이 유사하다. 지역 특화산업을 육성한다는 점에서 역할이 겹친다.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에서도 청년창업지원사업을 2010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대구에는 12곳의 창업보육센터가 있다. 지역 곳곳에 포진한 338개 보육실을 통해 창업기업에 입주공간을 제공하고 기술사업화를 돕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이달 13일 계명대 대명캠퍼스에 청년창업사관학교를 개소했다. 전국 5곳에서 운영하던 것을 12곳으로 확대하면서 대구에도 들어섰다. 이곳은 사업화 자금 지원과 사무공간'시제품 제작실 제공, 전문가 교육 등 혁신센터와 비슷한 사업을 추진한다.
이외에도 대구시는 2001년 지정한 동대구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에 32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동대구벤처벨리 기업성장지원센터'를 2020년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이 역시 창업기업 육성을 목표로 한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관계자는 "올해 들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애초 취지인 기술벤처 사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 측면이 있다"며 "지역 중견기업의 사내창업을 추진하는 등 다른 창업 기관과 차별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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