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장씨 성을 가진 화가가 있다(이렇게 시작하는 글이 있었다. 영화 평론이었는데, 따라한 글이란 걸 들켜 망신당하기 전에 미리 고백하자. "세 명의 철학자 쟈크가 있다. 라캉, 데리다, 랑시에르." 식이었나.). 그들은 장승택, 장재철, 장준석이다. 세 장 씨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미니멀리즘 계열의 추상화가라는 점이다. 캔버스에 붓질하는 그림 대신 특별한 수를 쓴다는 점도 있다. 장승택 작가는 플라스틱 위에 여러 색의 물감을 끝도 없이 뿌려서 밍밍한 단색 면을 창출하고, 장재철 작가는 캔버스를 울퉁불퉁한 모양새로 바꾼 것 같은 틀에 울긋불긋하게 자동차 도색한 듯 작품을 구워낸다. 여기 장준석 작가는 품목이 더 다양하다. 시리즈 설명을 작업지시서처럼 쓰면 대충 이렇다.
1.글자 모양의 입체를 조각처럼 캐스팅해낼 것 2.아주 자잘한 모양을 만들고, 평면 위에 붙여 액자로 덮어씌울 것 3.글자 낱개를 오브제나 상징물과 함께 두어서 새로운 상황을 연출할 것 4.낱개를 보도블록처럼 짜 맞추어 입체로 혹은 평면으로 설치할 것 5.글자가 가진 뜻에 맞게 퍼포먼스도 하고 사진도 찍어서 기록을 남길 것 #모든 것은 과정일 뿐 새로운 도상과 기법 실험에 끝없이 힘쓸 것.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꽃을 피우고, 숲을 가꾸고, 볕을 들이고, 별을 빛낸다. 꽃과 숲과 볕과 별. 그 낱낱의 글자는 종이 위에 찍힌 이차원으로부터 삼차원의 입체로 넘어간다.
이번에는 그 아이디어가 한꺼번에 공개되었다. 특히 별 시리즈가 새롭게 나왔다. 꽃도 꽃밭을 이루고, 숲도 생태 군락이지만, 그건 사람의 손길이 닿기도 한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은 다르지 않나. 별들은 보는 우리 입장에서 별자리나 은하수의 패턴으로 확인된다. 그 어떤 별들도 가령 군대 열병식처럼 횡대 종대를 맞춘 법이 없는데, 거기에 장준석 작가는 강박적인 질서를 잡아둔다. 꽃과 숲 연작과 달리 이번에 등장한 별은 삐딱하다. 행진 중에 지휘관에게 고개 돌려 경례하듯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귀엽다. 기준 선이 되는 한쪽 열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야 되는데, 작가가 그런 유머까진 부리지 않았다. 그건 모를 일이다. 전시 공간 칸칸이 놓인 작품엔 이런저런 뜻이 숨어있으니 말이다. 특히 장 작가의 모친이 키운 풀들의 보금자리를 보자. 거기엔 아버지를 보내고 남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어머님, 늘 건강하세요.'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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