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스틸러(scene-stealer).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단어다. 말 그대로 극 중 등장하는 신을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 발군의 캐릭터 소화력을 자랑하며 주연이 아닌데도 매 장면마다 주연보다 더 돋보이는 배우를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 조연급 배우 중 특정 작품에서 유독 눈에 띄는 활약을 했을 경우 신스틸러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리고 신스틸러라고 불리는 순간부터 배우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활동 폭을 넓히게 된다. 그만큼 신스틸러라는 별명은 배우에게 있어 존재감과 연기력을 입증할 수 있는 명예로운 수식어다. 지금은 주연급으로 발돋움한 유해진과 마동석도 조연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신스틸러라고 불렸던 배우들이다. 오달수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조진웅과 라미란도 주연급으로 떠오르기 전 조연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해냈던 신스틸러였다. 최근에는 영화 '범죄도시'의 진선규, 그리고 '내부자들' 이후로 줄곧 승승장구하는 조우진 등이 대표적인 신스틸러로 주목받고 있다. 배우 진서연도 영화 '독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단번에 충무로의 신스틸러 대열에 합류했다.

#진서연, '독전'으로 강렬한 인상
최근 가장 돋보이는 신스틸러를 꼽으라면 단연 '독전'의 진서연이다. 극중 고(故) 김주혁의 파트너 보령 역을 맡아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던 배우다. 날렵하고 마른 근육질의 체구에 흐트러진 단발머리, 여기에 초점없는 눈빛으로 휘청거리는 걸음걸이까지 더해 마약에 찌든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비주얼은 물론이고 위압적인 표정이나 목소리에 날카로운 손짓까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캐릭터에 동화된 상태에서 나온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을 압도했다. '독전'은 특히나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만들어낸 강렬한 캐릭터들이 즐비했던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된 뒤 진서연이 연기한 보령은 그 쟁쟁한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그리고 대종상 조연상을 비롯해 각 시상식 조연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사실 '독전' 개봉 전의 진서연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07년께 데뷔해 11년째 활동하고 있는 중견배우이고 드라마에 주로 모습을 보였지만 활동 경력에 비해 출연작 편수가 많지 않고 그중 눈에 띄는 히트작도 없다. 큰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데다 연기력까지 뛰어난 배우지만 소위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기에는 강하고 센 느낌이 있었고 그렇다고 영화 쪽으로 가자니 최근 10여 년간 여자 캐릭터가 중심에 선 작품이 극히 드물어 기회가 없었다. 본인이 가진 이미지와 연기력을 적절하게 보여줄 기회를 오랜 기다림 끝에 '독전'을 통해 만나게 된 셈이다. '독전'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은 오디션을 통해 수많은 배우를 만나보면서도 보령이란 캐릭터에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해 결국 캐릭터를 수정할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 배우 한효주의 추천으로 알게 된 진서연의 즉흥연기를 보고 캐스팅을 확정할 수 있었다. 진서연이 보령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적역을 만나 빛을 발하게 된 케이스다.

#진선규, '범죄도시' 이후 승승장구
'범죄도시'의 진선규도 요즘 신스틸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배우다. 마침 진서연과 같은 진 씨인 데다 진서연이 '독전'으로 떠오르기 직전에 '범죄도시'로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진선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나와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다. 2004년에 무대에 데뷔했으며 2010년께 '로드 넘버 원'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동 폭을 넓혔다. 출연작을 살펴보면 드라마 '무신' '육룡이 나르샤', 영화 '화차' 등 인기작들이 눈에 띈다. 그중 드라마 '쓰리데이즈'와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꽤 비중있는 조연을 맡아 잠시 주목도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사실상 진선규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여전히 '무명배우'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연극무대에서 기본기를 다져 카메라 앞까지 온 이 배우의 연기력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범죄도시'의 장첸 캐릭터를 연기한 윤계상이다. 드라마 '로드 넘버 원'의 주연으로 출연할 당시 연극을 하다 드라마에 발을 디딘 진선규를 만났고 당시 윤계상은 진선규의 연기에 반해 각별히 따르며 절친한 사이가 됐다. '범죄도시' 캐스팅이 진행되고 있을 당시 진선규는 오디션에 탈락했지만 다시 재오디션 신청을 해 감독을 만났고 절치부심 끝에 위성락 캐릭터를 따내 윤계상과 주연과 조연으로 재회했다. 극중 위성락은 윤계상이 연기한 장첸의 심복으로 잔인하고 악독한 조선족 깡패다. 그리고 이 영화로 진선규는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지게 됐으며, 윤계상 역시 진선규와 함께 하며 연기 인생에 있어 첫 악역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소화했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범죄도시' 촬영 당시 윤계상이 진선규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촬영분량 일부분을 협의 하에 진선규에게 넘기기도 했다는 후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진선규가 '범죄도시'로 청룡영화상 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윤계상이 전화를 걸어와 펑펑 울며 축하해주기도 했다. 잘 생긴 외모와 인기를 기반 삼아 주연급 배우로 활동했던 윤계상은 자신보다 연기력이 뛰어난 진선규의 실력을 흠모했고, 주연을 맡기엔 부족한 외모를 가졌지만 연기력이 뛰어난 진선규는 윤계상의 응원 속에 유명배우로 발돋움했다. '범죄도시' 이후 '암수살인' '완벽한 타인' '동네 사람들' '출국' 등의 영화에 모습을 보였고 이어 '극한직업' '암전' 등의 작품에 주연급 캐릭터로 캐스팅된 상태다. 머지 않아 신 스틸러라는 수식어를 쓰기에 민망한 주연급 스타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조우진, 드라마-영화 오가며 맹활약
영화 '내부자들'을 떠올릴 때 주로 거론되는 건 이병헌의 명연기, 그리고 "대중은 개, 돼지" 등 백윤식이 남긴 대사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몇 발자국을 더 들어가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이병헌과 백윤식의 강한 이미지를 지우고 나면 보이는 또 한 명의 배우, 조승우가 아니라 조우진이다. 유독 뇌리에 박혀 없어지지 않는 비쩍 마른 남자 조우진은 극중 조상무 역을 맡아 흔히 볼 수 없었던 악당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반듯하게 빗어넘긴 머리, 힘이라곤 쓰지 못할 것처럼 생긴 호리호리한 남자가 표정 한번 바꾸지 않고 톱으로 사람의 신체를 잘라낸다. 사무실에서 팀원들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팀장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기, 여기"를 잘라내라며 톱을 들고 신체 부위를 지정해주기도 한다. 이런 싸늘한 느낌이 근육 하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조우진을 무서운 악당으로 보이게 만들어준다. 캐릭터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낸 조우진의 연기력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이 독특한 이미지의 악당을 만들어낸 조우진은 '내부자들' 이후 줄곧 꽃길을 걸었다. 드라마 '38사기동대'에서 세금징수국장 안태욱 역을 맡아 마동석과 격돌했고, 빅히트작 '도깨비'에도 육성재의 비서 역을 맡아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에도 출연했다. 또 '리얼', '보안관', '브이아이피', '남한산성', '강철비', '1987', '창궐' 등의 영화에 이어 신작 '국가부도의 날'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소화했다. 송강호 주연작 '마약왕'에도 캐스팅됐으며, 이후에도 줄줄이 출연예정작의 크랭크인 일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한국영화를 '이경영이 출연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 또는 '오달수가 출연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구분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두 배우가 다작을 했다는 말이고 그만큼 많은 작품에서 러브콜을 받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한국영화를 '조우진이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구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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