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 비밀이다/손가락 꼭꼭 걸고/맹세까지 해놓고선/밤사이 마음 변해/해 뜨자 여느 때처럼/동네방네 나팔 부네'
'짝꿍'이란 제목의 동시조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이처럼 생활 주변에서 보이는 소소한 풍경, 작은 사건들, 감추고 싶은 속네 등을 섬세한 시어로 60편을 소개하고 있다. 군데군데 이한성 씨의 정감어린 수채화도 눈을 사로잡는다.
'사랑채 마루 끝에 가만히 졸다가는/할아버지 기침소리에 후다닥 깨어나서/앞장서 걸어 나가네, 귀가 밝은 지팡이' -단짝-
이 작품은 할아버지가 외출할 때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할아버지와 '단짝' 관계로 그려낸 작품이다. 할아버지와 지팡이는 단짝이자 한몸 같은 관계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할아버지가 집 나설 차비를 하자 지팡이가 스스로 앞장서 걸어나간다고 노래한다. 할아버지 기척을 금방 알아차리는, 그래서 귀가 밝은 지팡이인 것이다.
이지엽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참으로 정겹고 생명성 넘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번 동시조집 전편에는 시인의 서정적 자아와 그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정서가 배어 있다.
오래된 비유를 현대에 맞게 새롭게 쓴 작품들도 많다. '엄마도 집 한 챈데/아빠도 집 한 채고/아들도 집 한 챈데/딸들도 집 한 채네/저마다 딴 집에 살면서/가족이라니 이상해' -달팽이-
달팽이 껍데기를 집에 비유하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시인은 이 오래된 비유를 오늘날 핵가족의 문제로 연장하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이지엽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이재순 시인의 이번 동시조집이 다른 시인의 작품들과 다른 점을 3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 서정적 자아와 세계와의 조화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 둘째 서정적 자아의 눈에 비춰진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바라보려는 노력, 셋째 우리말의 아름다운 질감을 잘 살리고 이를 교육적 입장에서 학습하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책장에 꽂아 두고 때때로 암기하도록 하면 언어순화와 정서적 안정에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 109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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