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만세시위 최초 모의자 김계한 선생의 색안경

입력 2018-09-30 14:48:08 수정 2018-09-30 20:38:30

안동지역 만세시위의 최초 모의자 중 한 명인 김계한 선생의 손자 김화석 씨는
안동지역 만세시위의 최초 모의자 중 한 명인 김계한 선생의 손자 김화석 씨는 "당시 할아버지는 지독한 옥살이에 안구를 적출하는 고통을 겪으셨고 그로 인해 색안경을 끼고 다니셨다"고 했다. 김영진 기자

"할아버지는 당시 까만 색안경을 끼고 다니셨어요. 남들이 보기엔 멋쟁이 같았겠지만 그 내면엔 아픈 사연이 있었어요."

안동지역 최초 만세시위 모의자 김계한 선생의 손자 김화석(안동교회 원로장로) 씨는 당시 할아버지가 색안경을 끼고 다닌 이유에 대해 독립운동의 증거이자 아픔이라고 설명했다.

안동지역 만세시위 최초 모의자 중 한 명인 안동교회 김계한 선생의 생전 모습. 김 선생은 만세시위 주동자로 일경에 체포돼 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안구를 적출해야 했고 흉한 외모를 가리고자 색안경을 쓰고 다녔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안동지역 만세시위 최초 모의자 중 한 명인 안동교회 김계한 선생의 생전 모습. 김 선생은 만세시위 주동자로 일경에 체포돼 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안구를 적출해야 했고 흉한 외모를 가리고자 색안경을 쓰고 다녔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올해로 92세인 김 씨는 "안동교회 교인이셨던 할아버지는 당시 70대의 고령에도 직접 만세시위를 개최하고자 사람들을 모으셨을 정도로 나라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계셨다"며 "그 당시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만세시위에 참가했고 할아버지는 시위의 주동자로 몰려 일경에 체포돼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셨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당시의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 요즘의 선글라스와 같은 검은색 안경을 낀 모습들만 남아 있다"며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영양 결핍과 고문을 당했고 후유증으로 안구를 제거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이 안 보이는 색안경을 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농사를 주업으로 생계를 꾸려오던 집안에서 할아버지가 옥살이하자 김 씨의 부친은 당장에 돈이 되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보조 목수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김 씨는 가족들은 비록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 하나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김화석 씨는 "할아버지의 색안경은 독립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같이 운동을 하셨던 분 중에 아직 제대로 수훈을 받지 못한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분들의 활동상이 밝혀져 우리 후손들에게 좀 더 모범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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