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기간 짧은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하고 전문조합관리인 도입해야
최근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뛰면서 재건축·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사업 추진까지 대개 10년 이상 소요되고, 정비조합과 지주, 조합원 간에 복잡다단한 이견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전문가들은 정비조합 자체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을 극복할 능력이 없는데다 특정 구역 전체를 일제히 철거하는 대규모 재개발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끊임없는 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땅값 높은 수성구는 연일 소송 중
고분양가 탓에 정비사업 수요가 높은 수성구는 정비사업을 둘러싼 송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23일 대구법원에서는 수성구에 사업구역을 두고 있는 한 지역주택조합 임원들이 초초하게 재판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1천340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해당 지역주택조합은 이날 재판 결과에 따라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주택조합은 지난해 10월 임시총회를 열고 땅값 상승 등의 이유로 3억1천900만원 추가 분담금(분양가 상한제 미적용시 2억5천만원)을 내기로 의결했다.
그러나 사업 초기 5억원 안팎이면 분양받을 수 있다는 기대와 달리 분양가가 7억 여원으로 오르자, 100여명의 조합원은 조합을 탈퇴하겠다며 200억원에 달하는 초기 납입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부득이한 사유가 없다면 임의로 조합을 탈퇴할 수 없다"며 "원고들의 개별적 의사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내부 규약에 따라 적법하게 결의된 이상 조합원 전체 의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조합원인 원고들은 결의사항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수성구 만촌동 한 주택재개발사업 추진위원회는 개발 방식을 놓고 주민 간 갈등을 빚다가 소송이 붙었다.
사업 초기 대륜고 인근 5만8천㎡ 규모의 주택밀집지역을 사업부지로 정한 추진위원회가 공영개발로 가닥을 잡자, 민영개발을 주장하던 일부 주민들이 대구시를 상대로 정비구역지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해당 지역 재개발추진위는 최근 주민 75%의 동의를 얻어 조합설립 신고를 하고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지산시영1단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도 인근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지산시영1단지정비조합은 지난 3월 700가구 규모의 기존 아파트를 허물고 29층 건물 9개동, 899가구로 신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근에 거주하는 14층 높이 아파트 주민들은 정비 사업이 완료되면 교통혼잡과 일조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구시를 상대로 사업시행인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택정비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2016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정비사업 관련 소송은 5천923건에 달했다.
이처럼 정비사업을 두고 소송이 빗발치는 것은 정비사업 자체가 토지매입, 자금조달, 시공사 선정 등의 과정에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진위원회 승인부터 조합 설립 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 계획 인가, 착공 등 단계별로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한다.
이처럼 정비사업을 둘러싼 소송이 잇따르면서 자연스레 사업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역에서 진행중인 주택정비사업 214개 가운데 준공이 완료된 곳은 40여곳에 불과하다. 또한 절반에 가까운 101곳은 2010년 이전부터 추진위원회 설립 또는 조합 설립 단계에 머물고 있다.
◆조합운영 전문화·소규모 정비사업 시급
전문가들은 정비조합의 허술한 조직과 부족한 전문성이 재개발·재건축사업을 장기화시킨다고 지적한다.
갈등은 빈번한데 비해 조합원이나 정비조합 임원 모두 정비사업에 문외한인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생계 등을 이유로 조합 업무에 관심을 집중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결로 선출되는 조합장은 전문성이 부족해 시공사나 시행사에 휘둘리거나 비용을 증가시키고 사업지연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 법학연구소 건설법센터가 2015년 국토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펴낸 '노후·불량주거지 재생을 위한 정비사업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정비사업 관련 형사소송 1천여건 중 717건이 조합 임원의 사기나 뇌물, 횡령 등에 관련돼 있었다. 사기죄가 302건으로 가장 많았고, 뇌물 및 배임수재증재죄 153건, 횡령·배임죄 152건, 명예훼손죄 110건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팀은 "정비사업 수행과정에서 철거업체, 설계업체, 용역업체, 시공사 등 조합 외부의 다양한 이익집단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이권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비조합 방식의 정비사업이 행정당국의 깊숙한 개입을 배제한 것이어서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전문조합관리인(CEO) 제도를 도입해 정비사업수행의 장애로 작동하는 조합의 비전문성을 극복해야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고착화된 전면 철거형의 대규모 정비방식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지적한다. 전면 철거 방식 자체가 조합과 조합원 간의 갈등과 도심 내 빈 집 및 폐공장 증가 등 도시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소규모 정비사업은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도시재생뉴딜사업과도 맥을 같이 한다.
2016년 '소규모 정비사업은 대구 도심 재활성화의 대안'보고서를 펴낸 정성훈 대구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에 도로, 공원 등 양호한 기반시설은 그대로 두고 노후한 주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은 통상 3년 미만의 사업기간이 소요돼 부작용이 적다"면서 "소규모 정비사업과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아직 성과를 평가하긴 어렵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맞물려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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