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더위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전국 평균 폭염일수가 31.2일을 기록하며 1994년의 기록을 24년 만에 갈아치우며 더위가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웬만큼 더위를 타지 않는 사람도 '차라리 혹한기가 낫다'며 식을 줄 모르는 불볕더위에 불평을 쏟아내곤 했다. 올해 연일 계속된 더위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8월 초 독일 퀼른이 38도, 스페인 마드리드는 40도, 포르투갈 리스본은 44도를 기록했다. 환경학자들에 따르면 앞으로 파괴적인 여름 날씨는 연례화할 가능성이 크고 그 영향력은 더 끔찍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상학자 폴 더글러스는 "이글의 소재가 된 1995년 '시카고 폭염 대참사'에 대해 앞으로 다가올 재앙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책은 23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무더위로 수백 명이 사망했던 사건을 다룬 책이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무엇이 시카고를 기상 재앙에 취약하게 만들었는지 탐색했다.

◆1995년 7월 시카고 폭염 대참사 분석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는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렸다. 더위를 이기지 못한 약 700여 명의 시민이 희생됐다. 구급차는 모자랐고, 병원은 자리가 없어 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폭염을 재난이나,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더위가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아니고, 홍수나 폭설처럼 가시적인 재앙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클라이넨버그는 폭염 사망자들이 생전 지내던 주거지역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현장에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단서가 될 사회학적 요인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대로 희생자의 거주지는 취약 계층 아파트나 싸구려 호텔이었다. 고독하게 죽어간 대부분 피해자는 빈곤층이나 노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지은이는 당시 치명적인 폭염에 의한 죽음을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비극의 관점에서 접근한 후 모든 결론을 정치, 사회적 실패로 귀결 시켰다. 명백한 인재(人災), 사회 시스템의 고장이었던 것이다.

◆희생자 대부분은 사회적 취약계층
폭염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약하고, 나이가 많고, 혼자서 더위를 견뎌야 했던 이들이었다. 특히 시카고 교외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취약계층 주민들을 더 심각한 사회적 고립으로 내몰았다. 이들 대부분은 노인 임대주택이나 원룸에 살고 있었다. 대부분 냉방장치 등 시설이 노후화되거나 관리가 허술해 범죄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다.
시카고 일부 원룸 호텔은 '인간 축사'라고 불릴 정도로 시설과 환경이 형편없었다. 노스이스트사이드 지역의 한 호텔은 합판으로 건물을 재구획해 침대, 옷장, 의자 하나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수백 가구를 수용하기도했다.
노인들은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적이었고 가족과의 교류가 뜸하거나 대부분 관계가 끊긴 상태였다. 한마디로 폭염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은 빈곤과 고립이었던 것이다. 또 저자는 재난에 긴급히 대처해야 할 공공 기관, 정부가 폭염 사태에 침묵하거나 방조함로써 이 재앙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기상 경고 무시하면 앞으로 재앙 반복
지은이의 결론은 분명하다. 미국의 폭염 참사는 하나의 사회적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 희생자가 죽어 나가는 사회 현상을 방치하고 더위가 지나가기만 하면 이 재앙을 쉽게 잊혀지도록 만든 시스템을 파헤쳐야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말미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폭염 같은 자연 재해도 문제이지만, 재앙에 무방비로 노출된 취약계층의 구조신호에 우리가 얼마나 귀를 기울였냐고 묻고 있다. 미국 사회가 이들을 그렇게 살도록 방치했기에 사회적 취약계층이 희생 됐다는 것이다. 실제 시카고 서쪽 마을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은 홀몸노인 비율이나 빈곤율도 비슷하다. 범죄율이 높은 노스론데일이 사우스론데일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은 이웃과 교류할 수 있는 지역 여건과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현지조사 결과 노스론데일 지역은 경제가 쇠퇴하면서 기반시설과 환경이 악화됐고, 주민들은 거리로 나가지 못했다. 시가가 우범지대로 변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우스론데일은 상업활동이 왕성해 거리가 번화했고 주민 간 공동체 활동이 활발했다. 즉 폭염 사망의 원인을 가혹한 기상조건과 함께 사회적 원인의 연관성도 들여다보아야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결론에서 클라이넨버그는 시카고 폭염을 도시 괴담의 하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여름이 지나간다고 해서 '폭염의 사회학'이 던지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취약계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폭염과 같은 재앙이 다시 다가왔을 때, 극단의 도시에서는 '시카고 재앙'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472쪽, 2만2천원.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공공지식연구소 소장이다. '미국사회학회지' '이론과 사회' '민족지' 등 학술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고 '뉴요커' '뉴욕타임스 매거진' '롤링스톤' '타임 매거진' '포천'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대중매체에 기고활동을 했다.
저서로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전파 전쟁' '국민을 위한 궁전' 등이 있다. 여러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힌 첫 작품이자 대표작 '폭염 사회'는 전미출판협회 사회학·인류학 분야 최고의 책, 영국사회학회 건강·질병 분야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극작품으로 각색돼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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