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택민(澤民)선생 옛이야기

입력 2018-09-19 15:50:24 수정 2018-10-16 10:55:48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택민은 김광순 경북대 명예교수의 아호이다. 한문학의 거두였던 고 연민(淵民) 이가원 연세대 교수가 선사했다. 택민(澤民)은 '사람들에게 베풀다'라는 뜻이다. 그는 평생 모은 자료로 이 분야를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나아가서 우리 모두에게 혜택을 베풀고 있다.

그는 반세기 동안 우리 옛이야기들을 수집·정리·분석해 왔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지(韓紙)에 붓으로 쓴 옛이야기 500편을 모아 84권의 고소설전집으로 출판했고 정리가 덜 된 것도 300여 편이나 있다. 출판된 것 중에는 오일론심기, 승호상송기와 같은 10여 종의 국내 유일본과 남계연담, 미인도와 같은 20여 종의 희귀본도 포함되어 있다. 정리가 덜 된 자료를 놓고는 아직도 그는 씨름하고 있다. 한마디로 택민의 문헌은 고전문학의 보고(寶庫)이다.

그는 필사본 고소설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고소설이 발견되면 값에 상관 않고 수집했다. 소장자가 기증해 줄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작품 해제 속에 내력을 세밀하게 밝혔다. 기증을 받을 수 없을 때는 월급 전액을 들여 구입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구매도 불가한 경우에는 복사본을 만들어 보관해 왔다. 이렇듯 긴 세월 동안 자료 수집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

택민이 수집한 자료는 전달 매체의 특성에 따라 오페라, 연극,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자료의 문학, 교육 및 경제적 가치는 지대하다. 고유한 문화유산이고, 국어국문학 연구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초석이며,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소설을 현대국어와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과 자료의 보존 및 연구를 위한 공간과 인력을 확보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 정부가 자료의 가치를 인정하고 과제를 해결하는데 발 벗고 나서길 바란다.

그가 설립한 택민국학연구원의 학술지 「국학연구론총」은 지난 11년간 21집까지 발행됐다. 60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회가 되었고 여기서 간행되는 학술지는 한국연구재단이 공인한 등재지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70여 개국의 한국학 연구기관들이 구독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부가 공인한 등재지가 되어 외국의 연구기관들까지 독자로 두게 된 연구원(院)의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필자는 40년 전에 택민 선생의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다. 하루는 조식의 '칠보시'(七步詩)를 일필휘지한 후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다지 급히 삶아대는가/" 조조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조비는 동생 조식을 불러 "네가 시를 잘 짓는다고 하니, 내가 '일곱 걸음'(七步)을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때 조식이 지은 시이다. 원문에 나오는 '동근생'(同根生)은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를 뜻한다.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동근생인 '콩'과 '콩깍지' 간의 달라진 운명에 비유한 시이다. 이렇듯 택민 선생은 제자들의 인성교육에도 열정을 보였다.

추석이다. 뿌리(根)인 부모와 조상께 감사하고, 동근생(同根生)끼리 정을 나눌 때이다. 더불어 우리 것, 그중에서도 옛이야기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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