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초상화와 프로필 사진의 이면

입력 2018-09-18 11:55:29 수정 2018-09-18 19:29:36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아직 사진이 없던 옛날, 사람들은 초상화를 그려 자신의 얼굴을 남겼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가의 얼굴은 거의 초상화의 이미지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식탁 위에 놓인 과일 등 유화를 생각해보면, 원근감과 원래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며 당대 실물 묘사의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음악가들의 초상화 중에서 베토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입을 꾹 다문 채 한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제자가 남긴 기록에는 초상화 당일에 아침식사에 대한 불만으로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고 남겨져 있다. 그의 작품 또한 얼굴처럼 강한 인상을 풍기기는 것이 많기에, 왠지 악보도 불같이 써 내려갔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베토벤만의 카리스마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옷도 너무 허름하게 입고다녀, 길을 걷다 부랑자으로 오인받아 체포된 적도 있다. 이 일로 나중에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장의 사과를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시니의 초상화는, 넓고 퉁퉁한 얼굴에 우람한 몸집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미식가로 먹는 것을 엄청 좋아했다. 37세에 완성한 오페라 '윌리엄 텔'을 뒤로는 오페라 작곡도 그만두고, 요리의 창작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경영에 힘을 쏟으며 남은 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초상화는 당대 인물들의 특징을 잘 파악해, 후세의 우리들에게 그 모습을 정확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시대는 발전하였고, 화가의 초상화는 이제 사진으로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어쩌면 실연보다 오래 남겨지는 것이 공연 팜플렛이기에, 연주 만큼이나 신경써써 준비하는 것이 프로필 사진이 아닐까.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헤어 및 메이크업은 필수사항이다. 오늘 멋진 사진을 남겨보리라며 굳은 각오로 스튜디오에 들어서지만, 조명과 반사판이 들어선 낯선 환경과 바로 코앞에서 이뤄지는 근접 촬영에 어색한 미소만 반복된다.

카메라맨의 직업 칭찬에 긴장도 조금씩 풀려가고, 연예인이 된 듯 카메라맨의 세세한 지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수고하셨습니다'란 인사를 끝으로 촬영이 끝난다. 하지만 진짜 중요작업은 어쩌면 여기서부터다. 100여 장에 달하는 사진 속에서 매의 눈으로 최고의 사진을 선정하고, 최종 완성본 사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몸무게 -5kg, 실제 나이보다 -5세 정도는 기본이다. 만족스런 나의 프로필 사진 완성.

사진이란 본래 초상화보다 정확하게 피사체를 비춰내는 것이지만, 최근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도리어 실물 묘사의 정확성은 떨어졌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초상화이든 사진이든 공통점은 그 한 장을 위한 남다른 수고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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