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우울한 명절나기…추석 대목은 옛말, 추석 상여는 줄고 임금체불은 크게 늘어

입력 2018-09-17 18:41:55

전통시장 매출 20~30% 감소…상여금 줄어든 회사도 태반

어느 때보다 풍성해야 할 시기이지만 추석 대목을 앞둔 17일 대구 서문시장은 예년에 비해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어느 때보다 풍성해야 할 시기이지만 추석 대목을 앞둔 17일 대구 서문시장은 예년에 비해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일년 중 가장 풍요로운 시기라는 한가위. 그러나 2018년 헤어날 길 없는 경기 침체의 늪 속에서 서민들은 어느 해보다 우울한 한가위를 맞이하고 있다.

제수용품 준비로 붐벼야 할 전통시장은 명절 특수가 사라졌고, 자영업자들은 오르지 않는 매출로 시름에 잠겼다. 근로자들은 얄팍해진 지갑에 임금체불까지 사상 최대 폭으로 늘면서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명절 특수 사라진 서문시장

"풍성한 한가위는 옛말이에요.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손님이 있나요?"

추석 명절을 1주일 앞둔 17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2지구 상가. 명절 준비로 북적여야 할 시장은 평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물전을 찾은 한 중년 여성이 "싱싱한 해산물이 있다"는 상인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제수용 조기 한마리에 1만5천원"이라는 말에 흥정을 하던 이 여성은 결국 생선을 사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이 곳 상인 김모(49) 씨는 "워낙 경기가 나빠서 제수음식도 덜 사는 것 같다. 가격만 물어보고 비싸다며 돌아서는 손님이 많다"며 "지난해 추석보다 매출이 30%가 줄어든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명절 제수용 음식을 판매하는 박아영(53·여) 씨는 "탕과 나물, 산적 등으로 구성된 명절 음식세트 주문이 작년엔 30개였지만 올해는 20개로 떨어진데다 구성되는 음식 가짓수도 줄었다"면서 "반면에 식재료 값은 뛰어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서문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방문이 줄면서 의류매장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인들은 손님들의 눈에 잘 띄는 진열대에 화려한 고가의 옷 대신 할인판매하는 행사용 제품을 내걸고 있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김인숙(48·여) 씨는 "과일 매장 대신 의류 판매점으로 바꿨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서 "명절 대목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걱정했다.

◆자영업자들도 명절 앞 '곡소리'

자영업자들도 사라진 명절 특수에 고심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크게 줄었거나 저렴한 제품을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17일 오후 서구 평리동 한 수퍼마켓은 손님이 서너명에 그칠 정도로 한산했다. 커피와 햄, 쌀 주류 등 추석 선물용 상품을 진열하던 이상수(48) 씨는 "작년 같으면 1만원을 썼을 손님들이 올해는 8천원만 쓴다"며 "예년 대비 매출이 20~30%는 떨어질 것 같다"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추석용품을 판매하는 다른 자영업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추석 선물용 세트 30% 할인'이라 적힌 홍보물을 붙인 중구 동성로 한 화장품 가게는 손님들에게 추석 선물용품을 판매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화장품 세트를 한참 바라보던 한 손님은 할인율을 반복해 묻다가 사은품으로 원하는 제품이 없자 구매를 포기했다. 직원 김모(30) 씨는 "화장품 한 개를 팔려면 줄다리기를 몇 번이고 해야 한다"며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단골 손님도 줄었다"고 말했다.

농수산물 매장에서도 시민들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서구 평리동 한 농수산물 매장을 찾은 손님들은 직원에게 연신 가격을 물었다. 직원 이민기(38) 씨는 "파는 사람도 힘들고 사는 사람도 힘들다"며 "특히 제사상에 필수인 배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어 걱정"이라고 했다.

남구에서 제삿상 업체를 운영하는 유태준(41) 씨는 "인건비가 너무 올라 단가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최근에는 직원을 내보내고 어머니가 일을 도와주는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음식 양을 넉넉하게 주문했는데, 요즘은 딱 맞춰 주문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비싸다는 푸념을 듣는다"고 했다.

◆줄어든 명절 상여금에 임금체불까지…허리띠 졸라매는 근로자들

근로자들이 얇아진 지갑에 명절나기가 버겁다. 경기침체로 명절 수당이나 상여금이 사라지거나 임금체불도 늘어난 탓이다.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유세희(29·여) 씨는 최근 지난해보다 절반이 줄어든 명절 수당을 받았다.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데다 미용실을 찾는 고객도 줄어든 탓이다.

유 씨는 "작년에는 아르바이트 직원들도 명절 떡값을 받았는데 올해는 아예 없다" 며 "추석 선물에 조카 용돈까지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주머니 사정은 녹록치 않다"고 했다.

영천에서 금속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5) 씨는 "올해 명절 보너스는 30만원을 주기로 했지만, 팀장급 이상은 30%를 삭감했다"면서 "불경기로 아예 임금조차 못주는 회사들도 있지만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임금체불도 크게 늘었다. 17일 대구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올 7월까지 대구경북의 임금 체불근로자는 1만7천46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3천786명에 비해 26%나 증가했다. 체불금액도 크게 증가했다. 대구경북의 체불임금은 809억1천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3% 늘었다.

시간제 근로자들은 급여 감소로 이어지는 긴 연휴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대구 달서구 한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김세영(26) 씨는 "이번 달 월급이 평소보다 25만 원이나 적어 추석 장보기가 두려울 정도"라며 "시간제 근로자여서 명절 수당도 없고, 연휴가 길면 그만큼 수입이 더 줄어든다"고 속상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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