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육아휴직 썼다고 승진 포기 마세요

입력 2018-09-13 16:58:03 수정 2018-09-13 18:26:17

정욱진 사회부 차장
정욱진 사회부 차장

최근 대구시가 11월 1일 시행을 목표로 대규모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시가 공개한 조직개편안에서 눈에 확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여성가족청소년국을 확대·신설하는 것이다.

이전에도 여성가족정책관이라는 비슷한 업무를 하는 조직이 있었지만 이번에 탄생하는 국(局)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저출산 극복과 일·가정 양립을 현실화시키겠다는 것이 시가 내세우는 신설 이유다. 그래서 국 밑에 출산보육 정책만 전담하는 출산보육과를 새롭게 선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대구시는 2018년도 상반기 승진·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 발표가 난 날, 7급 여성 공무원 A씨는 직속 상사가 일하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펑펑 울었다. 눈물을 흘린 사연은 무엇일까. 몇 년 전 아이를 낳은 A씨는 석 달가량의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아이를 낳은 기쁨은 잠시, 출산휴가 석 달 동안 아이 보는 재미에 흠뻑 빠졌지만 복귀 이후 승진 누락의 아픔을 내내 겪어야 했다.

첫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A씨는 열심히 일했지만 출산휴가로 쓴 석 달에 발목이 잡혀 근평에서 최하점을 받아 승진에서 멀어지게 됐다. 이후에도 열심히 일했지만, 출산휴가로 인해 비운 공백 기간이 승진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기에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아기를 얻었으니 승진은 잃는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부지런함을 알아준 상사가 인사 부서에 강력히 건의한 것이 반영돼 A씨는 그토록 바라던 승진을 하게 된 것이다. 승진은 꿈도 꾸지 않던 A씨가 이날 기쁨의 눈물을 흘린 이유다.

저출산은 국가적으로도 절체절명의 숙제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05명을 기록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이며, 조만간 1명 미만으로 떨어지는 '인구 몰락'이 머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최근 10년간 저출산 정책에만 130조원을 쏟아부었다. 복지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중앙정부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든 저출산 관련 제도만 2천 개쯤 된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선보일 대구시의 저출산 극복과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관련 정책 개발을 전담할 여성가족청소년국 신설 외에도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인사혁신제도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A씨처럼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인해 근평 등에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인사제도를 확 바꾸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남녀 직원 모두 육아휴직을 가면 인사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법에서 규정된 육아휴직이지만 정작 마음 놓고 쓰기가 쉽잖은 것이 현실이다. 일단 시청부터 시작해 구·군, 산하기관, 공공기관 등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이런 풍조가 점점 자리를 잡아 사회 전반으로 확대된다면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육아보육 분야에서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경우 제2, 제3의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엄마나 아빠가 된다고 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조급증이지 승진이 아니다. 일도 가정도 행복한 사회, 대구가 먼저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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