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②등잔걸이

입력 2018-09-10 11:52:57 수정 2018-09-10 16:19:10

등잔걸이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것을 만나는 순간 세월의 저편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나지막한 담장, 고만고만한 높이의 낮은 집들이 하늘 가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좁고 긴 골목에는 분주한 사람살이가 넉넉하게 담겼다. 이제는 시간 속에 묻혀 버린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생활사 전시관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러다가 거창한 것보다는 생활 주변에 흩어져 있는 소소한 물건들에 관심을 갖기로 하였다. 이를테면 각종 생활 도구․졸업장․증명서․승차권․만화책․사진 같은 시간 속에 묻혀 버린 소품들. 그 취지를 널리 알려서 기증을 받거나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은 공모를 통해 구입키로 하였다.

생각보다 호응도가 높았다. 그것들을 심사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허름한 등잔걸이를 만난 것이다. 아마도 어떤 늙은이가 구석진 곳에 처박아 놓았다가 들고 나와서 빛을 보게 되었을 테지만.

예전에는 등잔으로 불을 밝혔다. 그릇에 기름을 담아서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게 등잔인데, 사기로 된 것도 토기로 된 것도 있었다. 심지는 헌솜이나 노끈 또는 한지로 만들어 기름이 배어들게 해서 불을 켜도록 되어 있다. 불을 더 밝게 하려면 두 개의 심지를 사용하는데 이를 쌍심지라 하였다. 이른바 종지형 등잔이다. 뒷날 일본에서 석유가 들어오면서 뚜껑이 있는 호롱이라는 게 나왔다. 다들 석유등잔이라 하였다.

등잔걸이는 등잔을 올려놓는 기구이다. 나무나 놋쇠로 만든 것이 대다수였지만, 더러는 장식을 붙여서 귀티가 나도록 만든 것도 있었다. 지체가 높거나 부유한 집에서는 장인들이 공들여 만든 귀티 나는 것을 사용하였으나, 민서들은 나무로 된 소박한 것을 사용하였다. 더러는 등잔걸이도 없이 봉창이나 적당한 곳에 등잔을 얹어 놓기도 하였다. 부엌에는 등잔대를 걸어 놓았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세월의 때가 쌓이고, 그을음이 켜켜이 앉아서 마치 검정 무쇠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며칠에 한 번씩 됫병을 들고 멀리 있는 가게에 가서 석유를 사와야 했다. 할머니는 그것을 '왜기름'이라 하셨다. 이따금 등잔의 심지도 갈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불을 밝히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저녁상을 물린 뒤 어머니는 해진 양말이나 옷가지를 깁고, 나는 앉은뱅이책상에서 숙제를 하였다. 밤늦도록 공부를 하다 보면 메케한 냄새가 나고 머리도 아팠다. 심지어 콧구멍이 새까맣게 된 경우도 있었다.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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