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 유작, 유품 외지로 흘러가거나 고물상에 팔려나갈 것

입력 2018-09-11 05:00:00

로작가의 유품, 자료를 모아둘 수장고 만드는게 그렇게 어렵느냐?

"지역 원로 예술인과 작고한 유명 예술인들의 유작이나 유품이 지역에서 홀대받는 사이 외지로 흘러들어가거나 고물상으로 팔려나갈 겁니다"

지난 달 25일 본지가 '대구시 문화예술 아카이브 정책 부실' 을 보도한 뒤 10년 가까이 헛바퀴만 돌리고 있는 대구시의 아카이브 정책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원로 예술인들은 "원로작가의 유품, 자료를 모아둘 수장고 하나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냐"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대구 원로음악인 고 이점희(1915년~1991) 교수의 아들 재원 씨는 "선친은 일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광주 조선대, 영남대에서 교수를 지내며. 초창기 대구 오페라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었다며 "집에 피아노 유품부터 릴테이프, 팜플렛, 오페라 대본, 의상, 사진이 수백 점이 있지만 대구시가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방 후 '영남 음악계의 대모'로 불리는 이경희(1916~2004) 전 효성여대 교수의 사정도 비슷했다. 이 교수의 자녀인 윤진영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어머님이 생전에 남기신 비디오, 악기, 팜플렛, 사진이 수백 점이 남아있다"며 "아마 우리 세대가 지나면 모두 고물상으로 팔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태룡 안동대 초빙교수는 "이경희 교수는 대구에서 '피아노의 전설'로 불리던 분"이었다며 "효성여대 음대 창단 때부터 28년 동안 대구에서 음악 활동을 하신 분으로 소장 자료들은 한국 전쟁 후 대구 음악을 들여다보는데 귀중한 자료들"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아카이브 정책이 제자리를 맴돌자, 지역 문화계 일각에서는 대구시가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캠프워커 헬기장 후적지(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건설 중인 '대구대표 도서관'을 아카이브 정책과 연동해보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캠프워커 자리에 일제 강점기 80사단이 주둔했고, 해방 뒤에는 미군이 주둔한 만큼 그 일대가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장소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계 한 관계자는 "대구시의 아카이브 정책이 이렇게 겉도는 이유는 제도, 정책적 접근도 미흡했지만 아카이브 업무를 전담할 인력과 마땅한 전시·보관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우선 아카이브 업무를 전담할 인력 체계를 구축하고 전시·보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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