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독일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본 교육자의 과제

입력 2018-07-30 10:26:59 수정 2018-10-16 09:50:06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학교 밖 단체서 민주시민교육 맡아

민족사회주의·반유대주의·인종 등

역사적 테마에 접근 깊이 있게 토론

정치적 판단력 갖춘 시민 되게 도와

지난 6개월간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작용하였지만 은폐되었던 성차별적 구조,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가시화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젠더 기반 폭력과 공포와 혐오를 생산해내는 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이끌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성별 간 대결 양상을 보이고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각 개인들이 오늘날 정보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고 있는 '미투 운동'과 같은 시사적인 이슈나 사회 논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장(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가치와 관계한다.

그러나 모든 입장이 다 재현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권을 무시하는 견해나 차별, 비하 등 반인륜적인 표현을 여타 견해들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교육자는 보편성을 거부하는 입장을 지닌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하거나 그러한 논쟁을 수업에서 다루지 않기보다, 인권을 무시하거나 차별의 발언이 나올 수 있는 담론을 만드는 사회 구조에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교육과 관련해서 잠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에 눈을 돌려보자.

독일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정치교육'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우리는 정치교육이라 하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교육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치교육'이라는 용어는 능동적인 시민의 형성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정치적 분별력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200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안네 프랑크 교육소라는 학교 밖 민주시민교육기관에서 3개월간 교육 활동가 양성 과정에 참가하였다. 이 교육기관은 나치스가 유대인을 박해하자 프랑크 가족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프랑크푸르트의 적극적인 지역 주민에 의해 설립된 단체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안네 프랑크의 이름으로 청소년 만남의 장소가 생겼으면 하는 입장을 표명했었고 그의 희망은 구체화되었다. 안네 프랑크 교육소는 인권의 존중을 중요 가치로 삼는 정치교육의 장이 되었다. 이때 안네 프랑크의 자서전과 일기는 교육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서 안네가 던진 세 가지 질문(나는 누구인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에서 출발하여, 이 물음과 현 시대와의 관련성을 학습하게 된다. 독일의 현 세대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독일 민족사회주의, 반유대주의, 이민, 홀로코스트, 인종주의 등과 같은 역사적 테마에 접근하게 하고, 참가자와 안내자 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역사의 현재성을 다룬다. 청소년들이 주로 이 기관을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역사적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관심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까닭은 동년배의 안내자가 참여 집단을 위한 안내를 담당하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네 프랑크 교육소는 교육 주체들이 다양성의 인식과 존중을 배우면서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판단력을 갖춘 시민이 되도록 돕고 있다. 이때 교육자들은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를 학습자들에게 강압하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스스로 비정치적이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열정을 갖고 교육 주체의 경험과 신념을 논쟁과 성찰이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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