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산책]산을 내려가는 아이를 보내며[送童子下山(송동자하산)] 김지장

입력 2018-07-26 14:32:19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산을 내려가는 아이를 보내며[送童子下山(송동자하산)] 김지장

 

절집이 적막함에 너는 집이 그리워져 空門寂寞汝思家(공문적막여사가)

나에게 절을 하고 구화산을 내려가네 禮別雲房下九華(예별운방하구화)

대나무 울을 향해 죽마 타기 좋아했고 愛向竹欄騎竹馬(애향죽란기죽마)

절집에서 금모래를 모으는 덴 게을렀지 懶於金地聚金沙(나어금지취금사)

시내 밑 물 길으며 달을 부를 일도 없고 添甁澗底休招月(첨병간저휴초월)

사발에 차 우리며 꽃놀이도 이제 그만 烹茗甌中罷弄花(팽명구중파농화)

잘 가게, 부질없이 자꾸 울고 있지 말고 好去不須頻下淚(호거불수빈하루)

나는야 안개와 놀, 저 자연이 있잖은가 老僧相伴有烟霞(노승상반유연하)

 

중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한국 사람은 누구일까? 신라의 왕자로 바다를 건너가, 평생 수도했던 구화산(九華山)을 중국 지장신앙의 메카로 승화시켜놓은 김지장(金地藏: 696?-794?) 스님이 바로 그가 아닐까 싶다. 김지장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 위하여 자신의 성불을 포기했다는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중국 4대 불교 성지의 하나인 구화산에 가부좌를 틀고 계시면서 해마다 수 백 만 명의 참배객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입적일인 7월 30일에는 구화산 일대가 참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하니, 그 보다 힘센 한국 사람이 달리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김지장은 딱 2편의 한시만을 후세에 남겨놓은 시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마솥의 국을 다 먹어봐야 국 맛을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절집 생활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는 아이에게 지어 준 위의 작품 하나만 봐도 국 맛을 아는 데 부족함이 없다. 보다시피 이 작품에는 죽마 타고 노는 것은 좋아했지만, 진리탐구에는 게을렀던 한 동자승이 등장한다. 이제 물을 긷고 차를 우리는 동자승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하산을 하려는 그 아이는 노스님과 헤어지지 못하여 자꾸만 흑흑 흐느껴 운다. 그런 아이에게 노스님은 ‘나에게는 안개와 노을이 있으니, 내 걱정 말고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한다. 사제 간의 애틋한 정이 그 무슨 밀물처럼 짠하게 밀려오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참을 내려가다 되돌아보면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하는 스님의 오른손의 그 손짓만이 흰 구름 더미 속에 두둥실 떠 있지 않을까 싶다. (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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