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탈원전 이데올로기

입력 2018-07-26 05:00:00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 침공 준비가 한창이던 2002년 2월 기자회견에서 인간의 앎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알려진 앎'(known knowns). 말 그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알려진 무지'(known unknowns). 우리가 어떤 문제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셋째 '알려지지 않은 무지'(unknown unknowns).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무지이다.

이는 "이라크 정부가 테러집단에 대량살상무기를 제공했다는 증거가 부족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를 통해 럼즈펠트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세 가지 앎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무지'이며, 이라크가 테러집단에 대량살상무기를 제공했는지 여부도 바로 그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기 위한 언어적 곡예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따라서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앞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 점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알려지지 않은 무지' 중 대표적인 것이 2001년 911테러다. 이 사건에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를 암시하는 신호는 분명히 있었다. '착륙하는 데 관심이 없는' 비행기 조종 훈련생이 목격됐던 것이다. 이들 두고 스탠퍼드대의 엘리자베스 페이트 코넬 교수는 "모든 인간 현상은 발생 이전에 개연성을 미리 내보인다"며 "중요한 것은 이런 개연성에 접근하는 태도"라고 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문제에 접근하면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도 줄여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 실패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전력수요는 '알려지지 않은 무지'가 아니라 '알려진 앎'의 영역이다. 현재 발전 능력, 전력소비량 추이, 향후 발전소 건설 계획 등의 상수(常數)에 이상고온 등 몇 안 되는 변수(變數)만 감안하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도 못 했다. '탈원전'이란 이데올로기 말고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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