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

입력 2018-07-25 10:48:21

‘먹방’의 신은 누구? 잘 먹어야 산다!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대리 충족시켜주는 콘텐트, 그래서 항상 적정 수준 이상의 팬 층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콘텐트. 지난 10여 년 동안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은 다양한 방식의 포맷으로 진화과정을 거치며 인기몰이를 했다. '먹방'이란 용어 자체가 알려진 계기를 굳이 따지자면 2010년 개봉된 영화 '황해'의 하정우가 거칠게 김을 입 안에 밀어 넣던 그 장면을 언급해야 한다. 인터넷 방송 등에서 사용되던 '먹방'이란 말이 '황해'의 해당 신을 설명하는 데에 자주 동원됐고 이 때문에 자연스레 널리 퍼져 누구나 아는 용어가 됐다. 그리고 이 시기 이후 '먹방'을 표방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줄줄이 만들어졌으며 이 흐름은 시사교양은 물론, 드라마와 영화에도 이어져 이른바 '먹방'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김을 맛있게 먹어치우던 하정우의 '황해'가 개봉된 2010년이 바로 '먹방 부흥의 원년'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먹방'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히트치고 있는 지금, 대중문화 콘텐트 생산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열기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

#교양프로그램에서 시작해 드라마-영화까지

'먹방'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황해' 개봉 시기 즈음이지만 이미 안방극장에는 그 전부터 맛있게 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요즘의 '먹방'처럼 먹는 과정 자체를 부각시키는 건 아니었다. 이를테면, KBS 2TV '생생정보통'이나 'VJ 특공대'처럼 식당 등을 찾아가 음식 먹는 손님들을 보여주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좀 더 들어가 보면 SBS '결정! 맛 대 맛'과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다. 두 개 진영으로 나눠 치열하게 요리 대결을 펼치고 MC와 출연자들이 맛을 본 후 최종승자를 결정짓는 포맷이었다.

그 뒤로 시사교양 프로그램 중 대한민국 전역, 또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맛을 찾아보는 기획이 나왔고, 예능계에서도 지독하게 매운 음식을 먹거나 또는 빠르게 많이 먹는 이들을 보여주는 등 '먹방' 콘텐트의 재미를 적극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먹방'이란 용어가 대중화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음식과 먹는 모습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콘텐트들이 장르나 플랫폼의 벽을 무너트리며 다양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맛있는 녀석들
맛있는 녀석들

최근에는 예능과 시사교양 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웹툰까지 '먹방'의 인기를 반영하고 있다. 드라마 중에는 최근 시즌3를 시작한 tvN '식샤를 합시다' 시리즈가 있고 영화 중에도 '리틀 포레스트'처럼 대놓고 '먹방'을 표방한 사례가 있다. 두 작품 모두 '먹방'의 기본 팬층을 기반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윤두준 식샤를 합시다
윤두준 식샤를 합시다

소위 '먹방 웹툰'('먹방'과 웹툰, '먹방'과 영화라는 단어의 결합은 어법상 틀린 표현이지만 이미 흔히 사용하는 용어가 된 만큼 용이한 설명을 위해 그냥 사용하기로 한다.)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에 '먹방'을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가 나온 것이 오래 된 일은 아니라 사실 콘텐트 숫자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웹툰 쪽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 시도한 것보다 더 일찍 '먹방'을 소재로 도입한 예가 많다. 조경규 작가의 '오무라이스 잼잼', 오묘 작가의 '밥 먹고 갈래요?', 김계란 작가가 그린 '공복의 저녁식사'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각각 확고한 팬들을 거느리고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그중 '오무라이스 잼잼'의 조경규 작가는 약 8년 여 기간 동안 해당 시리즈를 시즌 별로 그리고 있으며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먹거리를 두루 소개하며 매 시즌마다 호응을 얻고 있다. 소재로 활용하는 음식은 고급요리부터 일상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 또는 봉지과자까지 그 종류가 광범위하다. 작가 본인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를 먹거리에 적용해 흥미로운 줄거리를 만들어낸다.

윤두준 식샤를 합시다
윤두준 식샤를 합시다

#잘 먹어야 산다! 최고의 '먹방' 스타는 누구?

만화나 드라마, 영화에서 두루 '먹방'을 소재로 차용한 건 사실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먼저다. '미스터 초밥왕' '신의 물방울' '맛의 달인' 등 음식 관련 만화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쏟아져 나와 이 장르의 인기를 견인했다. 아울러 음식 소재 영화와 드라마도 다양하게 만들어져 인기를 얻었다. 일본 지역 우동을 소재로 한 '우동', 배경을 남극으로 잡아 극한 상황의 '먹방'을 보여준 '남극의 쉐프' 등이 있다.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드라마 '심야식당' 역시 원작은 일본 드라마다. 그리고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역시 일본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처럼 국내 '먹방' 열기 자체가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 하에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최근 일본의 '먹방'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한국 내에서도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만큼 '먹방' 자체에 충실한 드라마가 국내에 없었기에 그만큼의 희소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 전에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다가 한국 음식 편 촬영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인기 콘텐트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먹방' 소재 콘텐트의 주된 인기요인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 소개하고 그 맛을 얼마나 잘 표현해 보는 이들에게 전달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웹툰은 그림을 그려내는 작가의 역량에 좌지우지되겠지만 이 콘텐트가 예능이나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질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당연히 연출자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실제로 음식을 먹는 출연자의 역할이다. 이때 그저 '열심히' 먹기만 해서는 '잘 먹는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이것도 경쟁력이 확보되어야 한다. 기본은 보는 이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이다. 품격을 유지하면서 진심이 느껴지는 표정을 짓고 보는 이들의 미각을 자극해야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주목할만한 '먹방 스타'들을 짚어보는 것은 '먹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먼저 국내 최초 '먹방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식샤를 합시다'의 윤두준이 떠오른다. 아이돌 스타 윤두준은 이 드라마에서 상당한 종류의 음식들을 '복스럽게' 먹어치운다. 캐릭터 설정상 표현력이 과하지도 않고 표정도 다양하지 않다. 하지만 '진심으로 맛있게 먹고 있다'는 느낌을 줄 만큼 성의있는 '먹방'이 인상적이다. '원조 먹방스타'라고 할 수 있는 하정우처럼 남자답게 척척 음식을 먹어치우며 '잘 먹어 보기 좋은 훈남'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음식 프로그램에서 꽤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어치운 백종원도 '맛있게 먹는 법'을 안다. 요식업으로 성공한 만큼 음식을 대할 때 항상 요리한 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다. 그리고 어떤 음식이든 일단 성실히 맛나게 먹어 보는 이들의 입 속에 군침이 돌게 만든다.

일본영화 남극의 쉐프
일본영화 남극의 쉐프

Comedy TV'먹방'예능 '맛있는 녀석들'의 김준현-김민경-문세윤-유민상은 큰 덩치에 걸맞게 뭐든 화끈하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줘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치킨을 먹을 때 입 안에서 단번에 뼈와 살을 분리시키는 등 '먹방'계의 '기술자'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 '먹방'계의 정상 자리를 차지한 이영자도 주목해야할 스타다. 알차게 먹는 모습도 눈길을 끌지만 그보다 맛에 대한 표현력이 국내에선 단 한번도 본 적 없었던 '지존'급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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