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 내의 각 중등학교 이상은 총독부 방침에 순응하야 여름 방학 중에 근로봉사단을 형성하야 땀의 보국을 할 준비 중이든바…괭이를 들고 공사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한다.'(동아일보 1938년 7월 17일 자)
한국 교육은 한때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도 부러워했다. 우리의 교육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다. 이 땅의 젊은이가 태어나 배우고 익힌 곳은 시대 따라 달랐다. 익숙한 옛날 배움터는 서당이었고, 근대 이후는 학교였다. 학교는 나라 젊은이가 꿈을 기르고 앞으로 할 일을 준비하는 그런 곳이었다.
학교에 대한 이런 믿음이 바뀐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다. 특히 한국 학생을 '근로보국'의 미명 아래 학교 밖으로 강제로 내몰던 1938년 7월부터가 그렇다. 대구에서는 7월 16일부터였다. 그해 7월 21일 경북 추풍령 기온이 39.8℃였다니 요즘 같을 때다. 대구 학생들은 '땀의 보국'을 위해 방학 때 10일씩 동원됐다.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 저녁 8시 20분 잘 때까지 시달렸다.
할 일은 공사장 작업부터 군수공장에 이르기까지 넘쳤다. 휴일, 남녀도 따로 없었다. 일제는 심지어 쉬지 말고 일을 하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월월화수목금금'이란 노래까지 보급시킬 정도로 광분했다. 그러나 대구 학생들은 이런 강제 동원을 되레 민족운동을 위한 저항의 기회로 삼아 맞서기도 했다.(권영배, 2008년)
대구의 여름은 이런 아픈 교육 역사를 가졌다. 80년 전 이즈음, 대구 학생은 연필 대신 괭이와 삽, 낫을 들고 들, 공사장, 군수공장 등으로 내몰렸다. 한국 학생에게 이런 고통을 준 일본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가르치지 않고 되레 우리 땅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왜곡하는 교육의 의무화를 2022년도 계획에서 3년 앞당겨 내년부터 하겠다고 17일 발표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짜증 돋울 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들이 지난 세월 무엇을 했는지 알 일이다. 끊임없는 일본의 도발에는 저들의 잘못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대책은 될 수 있어서다. 폭염 속 80년 전, 대구 학생들이 당한 고통과 희생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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