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
‘노안이라고? 난 아직 팔팔한데!’ 스마트 폰의 글씨가 잘 안 보이더니 급기야 수술 때 봉합사가 흐릿해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 안과에 들렀다가 ‘노안’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늙을 ‘노老’자가 붙은 노안은 노년층의 질환이라 생각했기에 충격이 컸다. “노안이 40대에도 올 수 있어요. 수술용 루뻬(Loupe, 확대경) 끼면 잘 보일 거예요.” 후배 의사의 위로를 듣는데 불현듯 필자를 찾아왔던 난청 환자들이 떠올랐다.
“노인성 난청입니다. 청력은 40대부터 나빠져요. 보청기를 착용하시면 잘 들을 수 있으니 염려 마세요” 의사는 쉽게 난청을 말했지만, 환자는 ‘노인성’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그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가는 귀 먹는다’는 노인성 난청은 퇴행성 변화에 의한 청력 감소를 말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25~60%는 대화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난청을 겪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고 딴소리를 해 중국 고전 서유기의 사오정에 빗댄 핀잔을 듣기도 한다.
‘눈이 멀면 사물에서 멀어지고, 귀가 멀면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헬렌 켈러의 말처럼 노인성 난청 환자들은 대인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다. 노인성 난청 환자의 약 20%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 아울러 노인성 난청은 치매의 원인 중 하나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의 연구 결과 노인성 난청 환자는 정상 노인보다 치매 발생률이 2~6배나 높았다.
안타깝게도 노인성 난청 환자의 청력을 회복시킬 방법은 아직 없다. 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보청기를 착용해 난청으로 인한 불편을 덜고 청력 손실의 진행을 막는 재활치료가 중요하다. 미국 노인 협회 조사를 보면 보청기를 착용한 2천300명 중 50% 이상에서 ‘삶의 질’과 ‘삶에 대한 자신감’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높은 빈곤율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한국의 노인들에게 보청기 구매 비용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는 청각 장애 진단을 받아야만 보청기 구매 시 건강보험의 혜택이 있다. 보청기가 필요하지만 청각 장애 기준에 못 미쳐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2014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청력이 저하 된 노인 중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비율은 20%에도 못 미쳤다.
따라서 노인성 난청 환자들에 대한 보청기 건강보험급여 확대가 시급하다. 지난 대선 시 대통령의 ‘어르신을 위한 9가지 약속’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보청기 착용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 청력이 나쁘면 당당하게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
루뻬를 끼고 수술을 하면 봉합사가 동아줄처럼 크게 보여 좋다. 노인성 난청으로 고통 받는 많은 어르신도 올바른 보청기 착용으로 타인과의 소통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멋진 백 세(百歲) 인생을 설계하길 바라본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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