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월드컵 개막에도 분위기 안 나는 러시아

입력 2018-06-15 16:32:22

취재진이 머물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크인 호텔 로비엔 공 모양의 장식물이 짤막하게 천장에 매달려 있을 뿐 월드컵 개최를 알릴만한 다른 장식물이나 현수막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호준 기자
취재진이 머물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크인 호텔 로비엔 공 모양의 장식물이 짤막하게 천장에 매달려 있을 뿐 월드컵 개최를 알릴만한 다른 장식물이나 현수막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호준 기자

풀코보국제공항, 파크인 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 그리고 스파르타크 경기장. 12일 밤(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어온 뒤 가본 곳이다.

풀코보공항을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성, 파크인 호텔에 짐을 풀고 잠을 잔 뒤 13일 오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을 찾아 2018 러시아 월드컵 취재를 위한 AD카드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와 다음 날 오전엔 한국 축구대표팀이 베이스캠프를 친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파르타크 경기장을 찾아 대표팀 훈련을 지켜보고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이곳에서 월드컵의 열기를 느껴보지 못했다. 14일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개막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데 말이다.

12일 입국 당시에도 공항에서 월드컵 관련 입국자들을 위한 별도의 입국심사대를 운영한 것 말고는 월드컵 분위기를 느낄 만한 소품을 거의 보지 못했다. 플래카드 등을 활용한 월드컵 홍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공항과 스타디움, 훈련장, 숙소 등이 도심이 아닌 외곽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월드컵 관련 현수막 등 홍보물을 찾기가 쉽잖았다. 혹시 무심히 지나쳤나 싶어 버스를 타고 이들 장소를 오가며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 가는 길에 설치된 월드컵 홍보 걸개. 이호준 기자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 가는 길에 설치된 월드컵 홍보 걸개. 이호준 기자

취재 AD카드를 발급받으러 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 주변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타디움 인근 도로와 연결 다리 등에 지정홍보물 및 가로 걸개가 설치된 것을 보기 전까진 월드컵 관련 홍보물이 거의 없었다.

취재진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도 월드컵 홍보나 월드컵을 위해 이곳을 찾은 손님들을 반기거나 환영할 만한 소품을 찾기 쉽잖았다. 호텔 로비에 공 모양의 장식물이 천장에 달려 있는 거 말고는 흔한 만국기나 환영 현수막도 없다. 취재진뿐 아니라 15일(현지시각) 열린 경기를 보기 위해 이란 등 축구팬들이 대거 이 호텔을 찾았는데도 말이다. 이 축구공 소품마저 천장에 짤막하게 달려 있어 일부러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달려 있는 줄 알지 못할 정도다.

이곳 한 택시 기사가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곳에 온 지도 몰랐다'고 할 만큼 이곳 시민들의 반응도 미지근했다.

13일(현지시각) 한국 대표팀 훈련장인 스파르타크 경기장에서 만난 홍성희 씨(가운데). 이호준 기자
13일(현지시각) 한국 대표팀 훈련장인 스파르타크 경기장에서 만난 홍성희 씨(가운데). 이호준 기자

유일하게 그나마 월드컵 분위기를 느낀 곳은 대표팀이 훈련하는 스파르타크 경기장이다. 13일 열린 팬 공개 훈련 때 현지인과 교민 등 250여 명이 이곳을 찾아 대표팀의 훈련을 보고 응원하고 사인도 받으면서 월드컵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특히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 교민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와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선수들을 연호하고, 또 '아리랑'을 부르며 응원해 눈길을 끌었다.

13일(현지시각) 한국 대표팀 훈련장인 스파르타크 경기장에서 만난 배중현 씨. 이호준 기자
13일(현지시각) 한국 대표팀 훈련장인 스파르타크 경기장에서 만난 배중현 씨. 이호준 기자

이곳에서 만난 교민 배중현(31) 씨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가 스웨덴으로부터 빼앗은 땅이고, 독일이 침공한 2차 세계대전 때 레닌그라드 봉쇄를 900일 동안 견뎌낸 곳이기도 하다"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스웨덴과 독일을 모두 상대한다. 대표팀도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응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다는 홍성희(39) 씨는 "이곳에서 우리 선수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월드컵이 개막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며 "한국이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6강전을 한다. 어렵게 16강 티켓을 구한 만큼 다른 나라 경기를 보고 싶지 않다. 꼭 우리 선수들이 이곳에서 16강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러시아 자원봉사자들도 이곳 훈련장에서 빨간색 티셔츠와 태극문양 페이스페인팅 등 한국과 한국대표팀을 상징하는 치장으로 취재진과 팬들을 맞아 월드컵 분위기를 더했다.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하면서 웃으며 친절하게 인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