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빈의 시와 함께] 저녁 일곱시/엄원태(1955~ )

입력 2018-06-12 16:26:02 수정 2018-06-13 23:31:55

장하빈 시인
장하빈 시인

저녁의 창문들은

제 겨드랑이를 지나간 바람이나

이마 위로 흘러간 구름들을 생각하느라

골똘하고 고요하다

나도 하루종일

어떤 생각이란 것에 매달린 셈이다

한동안 뜨겁게 나를 지나간

끝내 내것이 아니었던 사랑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그리 많지 않다

이 푸른 저녁 공기는

어떤 위안의 말도 전해준 바 없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위로받은 것이다

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흰 죽지 새의

쭉, 경련하듯 뻗은 다리의 헛된 결기를 보면 안다

저녁 일곱 시

하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벌겋게 타오르던 노을이

쇠잔해져 어둠에 사그라지는 것만 봐도 안다

마지막 네 눈빛이 그러하였다


―시집 '물방울 무덤'(창비, 2007)


'저녁 일곱 시'는 낮과 밤, 노동과 휴식, 현실과 꿈, 생과 사의 경계에 오롯이 놓여 있는 시간이다. 또, 그것은 오래전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시인이 병상에 누워 피를 걸러내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온 생을 반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참 안타깝게도, 인생의 저녁 시간을 앞당겨 맞이한 그의 "골똘하고 고요한" 생각이 머무는 곳은 바람, 구름, 노을, 사랑, 눈빛 등과 같이 곧 흘러가거나 쉬 사그라지는 애잔한 것들이다. 오직 "푸른 저녁의 공기"만이 흰 죽지 새의 헛된 결기를 지닌 그에게 하루치의 위안으로 다가오고, 마침내 생의 쓸쓸한 긍정에 이르게 한다. '병은 나의 스승이다'고 어느 수상 자리에서 밝힌 그의 소회처럼!

시간과 운명의 신이시여! '저녁 일곱 시'를 '아침 일곱 시'로, 노을의 시각을 먼동의 시각으로 당신의 해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겠는지요?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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