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강은경 기자
지난 26일 남북 정상이 예고 없이 다시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한 직후였다.
남북 정상은 '세기의 담판'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깜짝 회동'을 가졌다.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북미 회담 성공을 위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확인했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이번 회담의 요지다.
남북 관계가 훈풍을 타고, 북미 정상회담도 극적으로 다시 추진되면서 한반도 정세 변화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남북 정상의 깜짝 회동에 대해 정치권이 앞다퉈 논평을 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주요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회담을 깎아내렸다는 점이다. 비슷한 목소리를 내온 바른미래당마저 남북 관계 개선 움직임이 주는 긍정성에 주목했지만 한국당은 공세를 강화했다.
정태옥 대변인은 26일 구두 논평에서 "법률적으로는 아직 반국가단체에 해당되는 김정은과의 만남이, 국민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전격적이고, 비밀리에, 졸속으로 이뤄졌다"며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너무나 가벼운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앞서 427 정상회담 당시에도 '남북 위장 평화쇼'라며 폄하하다 비난 여론에 직면한 바 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사건들이 급작스레 열리다 보니 놀라움과 기대감이 생긴다. 생경함에서 오는 불안감도 고개를 드는 것이 사실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한반도 평화는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가 지면을 뒤덮었던 때도 있었다.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무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북미 회담이 기사회생 흐름을 보인 과정에서, 현실이 상상을 앞지르는 한반도 정세는 어느새 진영 논리를 뛰어넘고 있다. 내달 1일 열리는 남북 고위급회담 등을 시작으로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다만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소돼야 불확실성이 제거될 수 있는 만큼 아직 정부 부처들은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내부적으로는 검토를 하면서 차질 없이 준비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모든 부분의 결과를 낙관할 수 없음에도 예측하거나 평가할 수 없을 만큼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얼마 전 국회로 이동하기 위해 탔던 택시의 운전기사는 개성공단에 있었다고 소개했다. 택시를 몰기 전에 의류업계에서 30년간 일했고, 몇 년은 개성공단에 머물렀다고 했다.
요즘 트로트보다 뉴스를 더 자주 듣게 됐다는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결과는 알 수 없어도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겠느냐'는 말을 했다. 듣고 보니 문득 소설가 한강이 쓴 '흰'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ekk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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