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칼럼] 드루킹과 최순실

입력 2018-05-07 00:05:00

2014년 11월 28일 한 신문을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 문건이 공개돼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민간인 정윤회 씨가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십상시'(十常侍)로 불리는 청와대 보좌진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문건에는 권력 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른바 청와대 십상시 문건 파동이다.

박 전 대통령은 "찌라시에 온 나라가 흔들렸다"며 검찰에 문건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수사 지침을 내렸다. 수사는 사건의 핵심인 최순실'정윤회의 국정 농단 여부와 불법 정치 개입 의혹을 파헤치기보다 그 문건을 누가 유출했느냐로 흐름이 바뀌었다. 검찰은 '비선 모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처벌하지 않고, 문건 유출에 개입한 이들만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사건의 본질을 파헤쳤더라면 최순실'정윤회의 존재와 국정 농단 행태가 발가벗겨져 박근혜 정권이 국민의 손에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원으로 파워블로거인 김모(49'구속기소) 씨의 대선 여론 조작 사건(드루킹 사건)에서 최순실의 그림자가 짙게 오버랩된다. 드루킹 사건 수사 과정을 보면 '십상시 사건'과 비슷한 패턴으로 전개되고 있다. 앞길이 창창한 권력 앞에 검'경의 눈치 보기가 닮은꼴이다.

경찰은 드루킹 구속 후 그와 소통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김경수 경남도지사 예비후보를 44일 만에, 그것도 마지못해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검찰 역시 경찰이 신청한 김 후보의 통화 내역과 계좌 추적을 위한 영장이 기각됐는데도 후속 조치도 없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경찰의 수사책임자는 김 후보를 옹호해주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까지 했다. 경찰은 김 후보를 소환하면서 그 사유로 언론의 의혹 제기를 앞세워 수사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초동 단계 수사 부실'축소'늑장 수사의 전형이다.

김 후보는 드루킹을 단순한 정치 브로커로 여겼다고 했다. 드루킹이 운영하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회원들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이 대부분이다. 드루킹이 김 후보를 통해 청와대에 인사청탁한 오사카 총영사 대상자도 대형 로펌 출신의 변호사다. 4천500여 명 이상의 전문직군이 참여하는 모임이라면 대선 후보에게는 더 없이 매달리고 싶었을 게다. 특히 드루킹은 작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했을 때 댓글조작을 통한 여론전의 주도자다. 드루킹의 요구가 단순한 자발적 지지자의 청탁인데도 대통령 최측근인 김 후보는 왜 청와대에까지 직접 연결해주었나?

드루킹은 댓글공작을 통한 기여 지분을 가지고 정치에 적극 개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 선거전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세가 흘러가고 있다. 최순실이 오프라인 판에서 박 전 대통령을 도운 뒤 집권 후 권력을 농단했다면, 드루킹은 온라인 판에서 문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영향력을 키우고 권력 줄대기를 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최순실과 드루킹이 다른 점이 있다면 드루킹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해보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드루킹은 '실패한 최순실'이라 해야겠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이고,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드루킹 사건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2의 십상시 파동으로 자라 문 정권의 기반을 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문 정부는 십상시 파동에서 드루킹 사건의 해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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