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세 달, 남은 숙제는

입력 2018-04-25 00:05:00

담담하게…나와 가족이 정한 '生의 마침표'

김아솔 칠곡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김아솔 칠곡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미국의 바버라 부시 여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향년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특유의 소탈함으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부인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인물. 조지 H.W. 부시(제41대)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제43대)의 모친이다. 부시 여사는 호흡기 질환인 만성 폐쇄성 폐 질환과 울혈성 심부전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의학적 관점에서 그의 죽음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연명의료'와 관련을 맺고 있어서다. 부시 여사는 최근 건강이 악화하자 가족, 의료진과 상의한 끝에 연명치료를 중단했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 연명의료 중단을 둘러싼 논란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짚어봤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기까지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게 한 법을 뜻한다.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 호스피스 분야는 지난해 8월 4일, 연명의료 분야는 올해 2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의료계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에 찬성했다. 하지만 종교계를 중심으로는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오랜 진통 끝에 2016년 국회를 거쳐 '연명의료결정법'이 세상에 나왔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연명의료 결정' 등 두 가지 내용을 담은 법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인간다운 삶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라면 인간다운 죽음을 맞기 위해 치료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연명의료 결정'이다.

특히 관심의 초점은 연명의료 중단 문제.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가 스스로 네 가지 연명의료(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법의 골자다. 환자가 의식이 없다면 환자 가족의 결정이 필요한 문제다.

◆연명의료 적용 과정은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임종 과정의 기간만 연장하는 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다. 말기 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담당 의사가 확인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다.

담당 의사에 의해 말기라는 판단을 받은 환자라면 미리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된다. 몸 상태에 의해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 어떤 것인지 잘 판단해 결정하면 된다.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작성해둔 계획서를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못한 채 병이 갑작스레 진행돼 임종 과정에 이르러도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라면 문제가 될 게 없다.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혼란한 상태라면 환자 가족의 진술과 결정에 따라야 한다. 특히 연명의료에 대한 사전 의사 표시가 전혀 없었다면 환자 가족 전원 합의로 결정하게 된다.

지금 건강해 당장 죽음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을 때라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기관을 통해 해당 서류를 작성해 둘 수 있다. 지정 기관에서 작성한 문서가 아니면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www.lst.go.kr)를 방문해 지정기관을 확인해야 한다.

◆연명의료와 관련해 남은 숙제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이 기간 이미 3천 명이 넘는 이들이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2월 4일부터 이달 3일까지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모두 3천274명으로 집계됐다.

치료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 2천160명 가운데 실제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이가 1천144명. 또 임종 과정 이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연명의료를 거부했던 이들도 8명이었다. 남은 2천122명은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족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를 그만둔 경우였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기까지 2년 여유 기간이 있었다. 그동안 많은 의견이 오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정하고 보완할 점은 적지 않아 보인다.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 대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가족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만 해도 그렇다. 이 경우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에 해당하는 모든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환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방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가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종 과정에 이르렀을 때 법률에서 정한 친족이 전혀 없는 경우, 또 주변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해도 연명의료계획서라는 인정된 문서가 없는 경우라면 얘기가 복잡해질 수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의학을 고려하면 법률에 정한 연명의료의 범위 역시 계속 수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도움말 김아솔 칠곡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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