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두개의 문

입력 2018-04-25 00:05:00 수정 2018-10-16 16:34:53

턱을 괴고 앉은 사람의 시름이 깊다. 그의 발밑에는 인물 군상들이 소용돌이치듯 뒤엉켜 있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육체는 얼핏 보아도 200명은 됨 직하다. 당연했던 삶이 흔들리고 꿈꿨던 미래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죄로 얼룩진 육체의 사슬들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문 위에 선 세 인물이 이 광경을 지켜본다. 그들은 지옥을 지키는 어둠의 악령들이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작품 '지옥의 문'이다. '지옥의 문'에 반(反)하는 작품이 있다.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가 만든 '천국의 문'이다. '천국의 문'은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찬사를 한 데서 붙여진 별칭이다.

로댕의 '지옥의 문'은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에서 영감을 받았다. 기베르티 역시 로댕처럼 '천국의 문'을 제작하는 데 긴 시간(약 50년)을 할애했다. 그러나 '지옥의 문'에서와 같이 고통에 짓눌린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주문 제작인 만큼 불완전한 인간보다 완전한 신의 생애를 담고 있다. 성서에서 문은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조형언어는 종종 암묵적인 약속을 지킨다. 이를테면 긍정적인 뉘앙스는 밝은색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두운 빛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위의 두 거장의 선택도 엇비슷하다. '지옥의 문'이 어두운 무채색인 데 반해 '천국의 문'은 황금색으로 밝게 빛난다. 어둠과 빛이 고통과 환희를 뚜렷이 대비시킨다. 더하여 인간과 신이라는 대립 구도는 불완전한 인간의 현실과 완전한 신의 이상세계를 경계 지운다. 다른 듯 결이 같은 두 작품은 시각적이지는 않으나 없다고 할 수 없는 세계를 비추어 준다.

길고 고된 여정(약 1880~1917년) 중에 탄생한 로댕의 '지옥의 문'은 뚜렷한 조형을 버렸다. 거친 질감과 무채색 표면에 뭉개진 인체가 우리의 상상력을 고조시킨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서 주제를 따온 이 작품은 내용과 구성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도 맞닿는다. 날 것 같은 감정이 입혀진 '지옥의 문'은 로댕의 인생 역정을 기록한 일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긴 세월을 이 '지옥의 문'에 갇혀 산 셈이다. 지옥을 느낄 만큼 삶이 고행이었던 것은 아닐까.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개의 문이 우리를 유혹한다. '열려라 참깨'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안과 밖' '성(聖)과 속(俗)' '죽음과 생명의 갈림길'….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마음의 문이 울린다면 작가의 고된 예술노동이 헛된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