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평창 체육, 남북 음악, 다음?

입력 2018-04-10 00:05:00 수정 2018-05-26 21:50:22

'거칠게 날뛰며, 젖을 빨려 하는/ 어린 새끼를 걷어차고 만다/…/ 젖을 먹지 못해 안타깝게 사그라드는/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두금 연주가 시작된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애잔하게 흐르는 음악/ 어미가 차츰 조용해지며 두 눈이/ 잔잔해지더니 큰 눈망울 가득 눈물이 고인다/ 가만히 젖을 내어주는 어미/ 실컷 젖을 먹고 난 새끼/ 서로의 눈빛이 따뜻하다.'(김안려, '마두금 연주에 눈물 흘리는 어미 소')

몽골 전통악기로, 말머리 모양의 마두금(馬頭琴)은 두 줄 현악기이다. 우리 해금과 같은 계통이다. 소리는 애절하다. 맑은 영혼이 깃든 듯하다. 시인의 노래처럼 새끼를 거부했던 어미 소조차 눈물 흘리게 만들지 않는가. 게다가 새끼 낳을 때 겪은 지독한 산고(産苦) 탓인지 아예 젖을 물리지 않았던 어미 소가 기꺼이 젖을 내주지 않는가.

비슷한 시도 있다. 김창근 시인의 '마두금 소리'이다. 다만 소 대신 낙타가 등장하고 어미 낙타의 마음을 바꾼 것이 마두금 소리와 낙타 새끼의 울음소리일 뿐이다.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은 품고 있지/ 초원을 휩쓰는 바람 소리, 말발굽 소리/…/ 지독한 산고 끝에 새끼를 낳은 탓에/ 젖마저 물리지 않는 비정한 어미 낙타도/ 끝내는 눈물 흘리게 하는 새끼 낙타의 울음소리/ 아 저, 소리의 여음이나 닮을 수 있으려나/….'

음악은 이런 모양이다. 말 못 하는 소, 낙타조차 울리고 잃어버린 모성(母性)의 감정도 되찾게 하니. 하물며 사람이야. 특히 우리 민족은 예부터 음악을 좋아했으니 오죽할까. 음악으로 이 땅의 옛 사람이 하나 된 기록은 널렸다. 이제 세계가 알 정도다. 지구촌에 퍼진 음악 한류(韓流)는 바로 우리가 음악을 아끼고 즐기고 음악으로 하나 되는 민족임을 밖으로 드러낸 한 사례이다.

나라 안으로 따져도 같다. 옛 왕조를 꿰뚫어 음악 정책이 중시됐던 역사가 그렇다. 특히 조선 세종 왕이 유명하다. 음악을 아낀 선조로 그를 넘을 이는 없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음악을 좋아했고, 퍼뜨렸고, 함께 즐겼다. (음악) 연회로 신하'백성과 소통하기 등 뭇 음악 정책을 보면 '지음'(知音) 군주라 할 만하다. 심지어 '온천 행사의 머무는 곳마다 악공들이 음악을 울리고, 목욕 때는 담장 밖에서 연주했고, 인근 백성들이 거리에 넘쳤다'고 했으니 말이다.

음악으로 위 아래 하나 되기처럼, 음악을 통해 남북이 하나 되려는 일이 남북 강산에서 펼쳐졌다. 4월 1, 3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2018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이다. 이들 공연은 평창동계올림픽 때 펼쳐진 북한 공연단의 2월 8일(강릉)과 11일(서울) 공연의 답례다.

이 공연은 지난 5일 녹화방송으로 중계돼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선희가 열창한 신중현의 노래 '아름다운 강산'은 오늘날 남북의 대치 상황을 살필 때 가사 내용도 그렇지만 노래에 얽힌 사연으로 더욱 화제였다. '아름다운 강산'은 1970, 80년대 군사정권 아래 이뤄진 금지 목록 속의 노래였다. 음악을 잘 쓴 세종과 달리, 이 땅의 통치자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서도 뭇 구실로 여러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1975~1987년의 금지 조치 때 신중현은 이 노래를 비롯해 3차례 52곡을 금지당했다. 게다가 이 곡의 금지는 그를 좋아했다는 박정희 정권 때 이뤄졌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북핵을 둘러싼 남북 군사 긴장 상황을 풀려는 정책이 체육, 음악을 넘어 여러 분야로 퍼지고 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징역 24년 선고 같은 논란이 많은 대형 정치적 현안 속 진행되는 일이라 부정적 평가도 있다. 정치적으로 마땅히 그럴 수 있다. 그렇더라도 남북 민족의 피 속에 흐르는 음악 교감 등 공통 유산의 인자를 찾아 남북이 하나 되는 일조차 그만둘 수는 없다. 특히 남북을 요리(?)하려는 주변 강국의 눈초리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럴수록 살 길은 민족 유전인자에서 찾는 지혜가 간절하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과 항일 그리고 제3의 길 찾기의 어리석음처럼 강국에의 순치(馴致)보다 차라리 영원한 야생마로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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