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동사와 형용사 두 번째

입력 2018-01-29 00:05:00

지난주에 품사의 구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우리말에서 동사는 명령형, 청유형, 의도의 연결어미 '-러', 진행형 '-고 있다', 욕구를 나타내는 '-고 싶다'를 쓸 수 있지만, 형용사는 쓸 수 없다. 현재 시제 관형사형 어미로는 동사는 '-는', 형용사는 '-(으)ㄴ'을 쓴다. 보통 사람들이 이 구분과 관련해 접할 수 있는 내용은 딱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건강하세요.'와 같은 표현은 형용사에 명령형을 쓴 것이기 때문에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맞다, 걸맞다'가 형용사이기 때문에 '알맞는, 걸맞는'으로 쓰면 맞춤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말 어휘들을 적용해 보면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는 애매한 말들이 참 많다. 당장 이 글의 첫 단락만 보아도 '관련해', '틀렸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관련하다'는 동사지만 '관련해라, 관련하자, 관련하는'과 같은 형태를 사용하지 않는다. '틀리다'는 최근에 형용사 '다르다'를 대체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형용사가 아닌 동사로 분류한다. 그리고 '허구하다', '막다르다', '서슴다'의 경우는 '허구한 날', '막다른 골목', '서슴지 말고'와 같이 한 가지 형태로밖에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형태나 기능으로는 품사를 따질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전적으로 의미에 의존해 '허구하다', '막다르다'는 형용사로 '서슴다'는 동사로 분류한다. 국어 문법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이처럼 어렵다.

지난 12월 국립국어원에서는 '낡다', '못나다', '못생기다', '잘나다', '잘생기다' 5개 어휘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분류했는데, 핵심적인 근거는 이 어휘들이 기본형으로는 쓰이지 않고 '낡았다', '잘생겼다'처럼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었-'이 결합해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특수한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다. '잘생기다'는 '잘+생기다'의 합성어이므로 뒤에 오는 '생기다'가 동사이므로 동사로 보아야 한다는 어원상의 기준도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학교 문법에서 품사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들이 무력화되고, 앞으로 더 많은 어휘들의 품사를 변경해야 한다. 그런데 '공돈이 생기다'와 '예쁘게 생기다'를 비교해 보면 의미상으로 전자는 동사에, 후자는 형용사에 가깝다. 그래서 '공돈이 생기는 일', '예쁘게 생긴 아이'와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다. 이는 현재 시제 관형사형 어미로 동사는 '-는', 형용사는 '-(으)ㄴ'을 쓴다는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닮다, 얼빠지다'도 '생기다'와 마찬가지로 사전에는 동사로 분류되지만 의미적으로 형용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닮은, 얼빠진'과 같은 형태가 나타난다.

사전 수정은 형용사 어휘들을 동사로 재분류하는 방법과 동사 어휘에 형용사 뜻풀이를 추가하는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 것인지 보다 신중히 검토한 후에 해도 늦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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