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한가위도 지나고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우리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얘기한다. 평소 읽지 않던 책도 가을에는 몇 권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된 것은 사자성어 등화가친(燈火可親)에서 시작된 말로 중국 당나라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그의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기 위해 지은 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의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時秋積雨霽(시추적우제) 때는 가을이 되어, 장마도 마침내 개고
新凉入郊墟(신량입교허) 서늘한 바람은 마을에 가득하다.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 이제 등불도 가까이할 수 있으니
簡編可舒卷(간편가서권) 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아들에게 책 읽으라 잔소리하지 않고 이렇게 시 한 수로 아들의 책읽기를 독려했던 한유는 얼마나 멋진 아버지인가. 무엇보다 등불을 가까이해도 좋을 만한 계절이니 책을 좀 읽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뜻인데 표현이 정말 멋이 있다. 짧지만 마음 깊이 와 닿으니 아마도 한유의 아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을까!
오래전 어느 술자리에서 건배사를 대신해 한시 한 구절을 인용하던 선배가 너무 멋져 보여 한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정경에 자신의 심경을 가장 잘 실었다고 평가하고 싶은 이백(李白)이나 감수성이 넘치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두보(杜甫), 뜻을 펼치지 못한 괴로움을 시로 토로한 신기질(辛棄疾), 깨어진 사랑을 슬퍼하며 노래한 육유(陸游),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자연을 노래하며 자유의 삶을 산 도연명(陶淵明)과 '적벽부'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소식(蘇軾)의 시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특히 술을 가까이하며 즐겼던 이백의 '장진주' '월하독작' '산중문답' '산중여유인대작'과 도연명의 '음주' 같은 시들은 한 번쯤 술자리에서 인용하고 읊어도 좋을 만큼 멋이 있고 기품이 있는 시들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 시는 우리의 아픔이고 슬픔이고 기쁨이다. 다만, 삶의 순간순간 어떤 사람은 글로 남기고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노래로 남길 뿐이다. 한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집착과 아집을 내려놓게 되고 버리고 물러서면서 비로소 세상이 깊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살고 더 깨달으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한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초연함과 삶의 관조적 자세를 가지게 하며 마음을 두드리다 못해 눈물 나게 한다.
한 가닥 바람에도 가슴이 시린 이 가을, 한시 한 편 외우고 읊어보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어떤 종류의 책보다 한시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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