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포스트 공론화의 교훈

입력 2017-10-30 00:05:01

공론화를 거치면서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한다지만 반대파 설득에는 힘이 부친다. 대신 지지파 설득의 가능성은 보였다. 지지자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 있으면 반대파라고 설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때서야 갈등은 통제 가능 범위 안에 들어가고 연간 200조원이나 된다는 갈등비용 축소도 가능해질 거다.

만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선 공약을 이유로 공사 중단을 선언했으면 어땠을까. 온 나라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을 게 뻔하다. 매몰비용 3조원의 돈을 허공에 날렸다며 야당에서는 정권 퇴진까지 들고 나왔을지 모른다. 또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공사 재개 결정이었다면 대통령 지지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진보 진영 전체가 들썩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론은 공론화 후 공사 재개였다. 탈원전 기조는 유지한다고 했으니 탈원전파도 잠잠했다. 광우병 사태와 세월호 사고에서 나라가 폭망할 것 같은 경험을 한 국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떤 이는 우리 사회가 진일보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공론화가 우리의 갈등관리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기자의 생각은 'NO'다. 공론화가 던져준 건 긍정적인 신호다. 숙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라는 평가에도 일견 동의한다. 찬반을 떠나 결론에 대한 존중 의견이 90%를 넘은 건 그 자체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아직이다. 너무 요란하고 거창하고 부품하게 평가할 건 아니라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화에 대해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값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공론화라는 결론에 승복할 수 있는 정당성과 명분을 마련했다"고 평가했지만 한쪽만 봤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본 결론 같다. 앞으로 국정 운영에 중요한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청와대의 평가도 서둘러 내린 냄새가 짙다.

생각해 보자. 공사 중단을 내건 단체들이 한결같이 "조사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며 이례적으로 즉각 수용 의사를 밝힌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공론화 주체가 문재인 정부가 아니었다면 탈원전파들이 일제히 수용이었을까. 가정이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 'NO' 쪽이었을 공산이 크다. 또 공사 재개 결정의 주체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였다면 나라가 조용했을까. 해군기지 건설로 몸살을 앓은 제주 강정마을의 상처가 신고리에서 재발했을지 모른다. 같은 편이라고 믿는 정부에서 내린 결정인데다 공론화라는 절차적 성의까지 보인 만큼 반기를 들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정권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주체와 객체의 역전이자 칼자루와 칼날을 쥔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이들도 많다. 갈등의 해소와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제야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먼저 지지층, 같은 편을 설득하고 양보를 얻어내라는 거다. 반대편은 그다음이라야 가능하다. 역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같은 편만 끼고 돌고 반대파를 적으로 내몰다가는 나라가 결단이 난다.

적폐 청산도 마찬가지다. 야당에서는 휘몰아치는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한다. 누구든 언제든 범법이나 불법이 있었다면 그냥 넘길 수 없다. 불법과 범법을 덮자고 정치 보복이라고 우기는 건 억지다. 설득력도 떨어진다. 법대로 하면 된다.

같은 논리로 대통령을 지지한 이들에게도 법과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적폐도, 불법이나 범법도 눈감아주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완장을 차고 '갑'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는 비판이 더 나와서는 곤란하다. 그게 노조가 됐든, 시민단체가 됐든, 누구가 됐든.

이런 이야기도 문재인 정부이니까 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지금 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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