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世事萬語] 백색소음

입력 2017-10-25 00:05:01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고 2주일 입원한 경험이 있다. 6인실의 밤은 소음의 연속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병실에서 흔한 소음은 코 고는 소리. 그 소리도 천차만별이다. 사람마다, 날마다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연구개(軟口蓋)의 진동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소리, 쌕쌕거리는 소리…. 밤의 고요를 찢는 것은 코 고는 소리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아이의 환성, 허공에서 이뤄지는 노부부의 말다툼,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등은 커튼 하나로 막아내기에 역부족이다.

수면권(睡眠權)을 보장하라고 농성을 할 수도 없는 일. 자구책을 마련했다. 이음치음(以音治音), 즉 소리로 소리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동영상 공유 앱에서 바흐와 쇼팽의 클래식, 그리고 김광석, 정태춘, 이문세, 왁스, 유리상자, 여행스케치, 옥상달빛의 노래들을 찾아다녔다. 우연히 '백색소음'(白色騷音)이란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지리산 청학동 빗소리 천둥번개'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서울대 도서관 백색소음' '조용한 모닥불 소리' 등 자연과 일상의 소리들이 많았다. '수면유도'란 설명도 있었다. 그걸 믿어서 그런지, 그 소리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백색소음은 음폭이 넓어 공해에 해당하지 않는 소음을 말한다. 하얀색 빛은 프리즘을 통과하면 모든 스펙트럼의 색을 보여준다. 백색소음은 이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다. 백색처럼 넓은 음폭을 가졌다는 뜻이다. 백색소음은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잡음이다. 자장가처럼 균일하고 반복적인 소리는 주변의 소음을 덮어준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ASMR은 백색소음의 대표적인 사례다. ASMR은 자율감각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다.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를 통칭한다. 바람 부는 소리, 연필로 글씨 쓰는 소리,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이 있다. 2010년 무렵 미국, 호주 등지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백색소음은 약이 되는 좋은 소음이라고 한다. 뇌파의 알파파를 동조시켜 심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 도심의 슬리핑 캡슐 등에서는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소리를 녹음한 CD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백색소음의 효과에 대한 논란은 있다.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증명은 과학자의 몫이다. 다만 우리는 세상이 시끄러우니 좋은 소리를 욕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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