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기운 우뚝 솟은 삿갓 모양 胎峰, 전국 유일 왕자 태실 군집
성주(星州)는 '생명문화의 성지'이다. 천 년의 생명을 품은 세종대왕자 태실(世宗大王子 胎室)이 있기 때문이다. 태는 생명 탄생의 의미를 지니므로 세종대왕자 태실은 생명문화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많은 태실이 있지만 왕자 태실이 완전하게 군집(群集)을 이룬 유일한 곳이 성주이다. 이런 점에서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계유산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주군은 세종대왕자 태실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키려는 야심 찬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천하의 명당 선석산 자락 태봉
북악산에 휘영청 달이 걸려 넘어가기를 주저하고 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밤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하얀 벚꽃잎이 휘날린다. 세종은 달빛으로 물든 경회루를 걷고 있다.
"함길도(함경도) 절제사로 간 김종서 장군은 아직 소식이 없는가?"
최근 들어 함길도 근처에서는 여진족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진족들은 밤낮으로 국경을 넘어 조선 땅에 들어와 민가에 침입해 재산을 빼앗거나 불을 지르는 등 약탈을 하고 아녀자들을 잡아갔다. 세종은 백성들이 여진족에게 핍박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태산이다. 이에 세종은 김종서 장군을 보내 여진족 정벌을 명했다.
1433년, 드디어 함길도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전하! 김종서 장군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함길도 두만강 하류 여러 곳에 성을 쌓고 방어 진지를 만들어 6진을 설치했사옵니다."
조선 백성을 괴롭혔던 여진족 토벌 소식에 세종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내관이 급히 세종에게 고한다.
"전하! 감축드리옵니다. 교태전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왕자 아기씨가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세종의 눈빛이 또다시 번쩍였다. 뒤따르던 영의정 황희(黃喜)는 이렇게 고했다. "전하! 종묘와 사직에 복이 넘쳐나고 기쁨이 만백성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길지(吉地)를 정해 아기씨의 태(胎)를 묻어 자손이 번성하고 대통을 이을 수 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남자의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고, 벼슬을 높이며, 병이 없을 것이요. 여자의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예쁘고 단정하여 남에게 흠앙(欽仰)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전하! 속히 길지를 가려 태를 묻으셔야 합니다. 대저 하늘이 만물을 낳는데 사람으로서 귀하게 여기며, 사람이 날 때는 태로 인하여 장성하게 되는데, 하물며 그 어질고 어리석음과 번성하고 쇠퇴하는 이면은 모두 태에 매여 있으니 태란 것은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종은 어명을 내렸다. "경들은 들으시오. 왕자의 태를 묻을 길지를 추천해 올리시고.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설치하고, 안태사를 정해 태를 묻을 수 있도록 하시오."
황희는 석 달에 걸쳐 태를 묻을 전국 길지를 하나하나 점검했다. 그리고 1437년 황희는 세종에게 고했다. "전하! 왕자의 태를 묻을 길지가 한 곳이 있사옵니다. 경상도 성주 선석산(禪石山) 자락의 태봉(胎峰)이 적격이옵니다. 선석산의 태봉(258.2m)은 삿갓 모양으로 그 좌우를 시냇물이 감돌아 흐르고 있습니다. 태봉 주위로는 좌청룡과 우백호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이러한 지형을 풍수지리에서는 돌혈(突穴)이라고 합니다. 돌혈은 우뚝 솟은 봉우리에 생기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 생기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어우러져 형성된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 생기가 모인 길지 중의 길지이옵니다. 천(天)'지(地)'인(人)이 상호 교감하는 곳이 바로 경상도 성주 선석산 태봉입니다."
세종은 황희의 말을 다 듣고는 "태실 도면을 세밀하게 작성해서 올리고, 안태사를 보내 살펴보라고 하시오. 경들은 지체 없이 시행하시오"라고 명했다. 황희는 달포 뒤에 태실산도를 세종에게 바쳤다. 내관으로부터 태실산도를 받아 펼친 세종의 얼굴은 밤의 어둠을 걷어내고 새벽 동이 트는 태양처럼 환해졌다.
"가히 천하의 명당이로구나! 봉황이 양쪽 날개를 펼치고 나는 듯하며, 화살이 거침없이 뚫고 나가는 듯하오. 그 기운은 수도지맥과 금오지맥을 거쳐 염표봉산에서 갈라져, 우측으로 뻗은 맥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태봉이 있는 조곡산을 향하고, 왼쪽으로 뻗은 맥은 백마산을 거쳐 영암산에 이르오. 맥은 선석산에 다다라 오른쪽으로 혈을 호위하는 백호를 만들고, 왼쪽으로 뻗은 맥이 선석산 정상을 거쳐 청룡을 만들고 있소. 그리고 본 용맥은 현무로부터 배속의 아기 탯줄처럼 가늘고 길게 움직여 혈을 맺으니, 곧 승천하는 비룡(飛龍)의 기세요. 조선팔도에 이런 길지가 또 어디 있단 말이오."
세종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눈빛은 아침 이슬에 비치는 햇살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이튿날 조정에는 태실도감이 설치됐다. 태를 묻을 길일(吉日)과 길지(吉地)가 정해지고, 태실도감에서는 안태사를 성주에 보내 태를 묻게 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있는 세종대왕자 태실(국가지정 사적 제444호)은 1438년(세종 20년)부터 1442년(세종 24)까지 4년 8개월에 걸쳐 조성됐다.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기 등 총 19기의 태실이 조성됐다. 각 태실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앞과 뒤 두 줄로 정연하게 배치돼 있다. 대군과 군의 태실을 앞뒤로 구분해 배치하거나 태주의 출생 순서에 따라 배치한 것으로 보아 설계도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태실은 전체 19기 가운데 14기는 조성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계유정난(1453년)이나 단종복위(1457년)와 관련된 다섯 왕자(안평대군, 금성대군,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의 태실 경우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왕조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태실이 자리 잡은 태봉은 애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던 곳이다.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묘를 이장하도록 하고 태를 안치했다고 전해진다. 왕자의 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 또 왕실의 태실 조성 방식의 변화 양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네모난 기단석은 땅을, 연꽃을 새긴 둥근 뚜껑 모양의 돌은 하늘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중동석은 인간을 상징한다. 이는 곧 천'지'인이 한곳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성주군은 세종대왕자 태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종묘, 창덕궁, 왕릉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점을 고려할 때 태실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세계적으로도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다. 여기에 태실은 유네스코가 제시하는 등재 기준에도 적합하다.
이와 더불어 성주군은 세종대왕자 태실, 한개마을, 성산고분 등을 활용해 '생(生)'활(活)'사(死)'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를 통해 성주가 '생명력이 넘치는 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성주군은 2011년부터 매년 5월 성밖숲 일대에서 '성주생명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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