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서 '손꽹만' 모르는 사람 없을 정도
"어째서 별명까지 '꽹만'이냐 하지만 '손꽹만'이 하면 김천시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만큼 꽹과리 잘 친다는 소리니까."
무형문화재 보유자라고 품위를 지키기는커녕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금릉(김천) 빗내농악 상쇠 손영만(53) 씨. 오케스트라로 치면 지휘자나 마찬가지인 상쇠 역의 그는 "농악은 확실한 협업이다. 쇠 하나만 달랑, 북 하나만 달랑 친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상쇠라서 보유자가 된 건 아니다"라고 말문을 텄다.
손 씨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김천 빗내농악의 제8대 상쇠다. 2006년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70대 4번 타자 이승엽만큼이나, 192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김천 빗내농악의 중심 상쇠의 역사는 길었다.
"물이 빗겨 흘러간다고 해서 빗내마을이죠. 수해가 빈번하고, 교통 요지다보니 외부 침략도 많았어요. 그래서 빗내마을 사람들이 단합이 잘 됐어요."
손 씨는 김천농고 출신이다. 당시 김천농고는 농악부로 유명세를 떨쳤기에 손 씨는 김천농고 진학을 당연시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교탁을 붙들고 양쪽을 쳐댔다고 한다. 지금도 북, 장구처럼 옆면이 둥그런 것만 보면 습관적으로 좌우를 친다고 하니 그야말로 직업병이 돼버렸다. 까까머리 고교생 신분의 농악부원들과 함께 빗내마을 어르신들에게서 배웠으니 농악이야말로 자기주도형 학습의 절정이었다. 이 정도면 김천농고 농악특기생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제법 정설로 들린다.
그런 그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농악이라는 특기를 살려 고교 졸업 후 그는 영남대 국악과에 진학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악과의 커리큘럼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농악은 야외에서 하는 건데 실내악은 못 하겠더라고요. 대학 캠퍼스에 가니 하나같이 실내에서 연주하는 정악을 가르치더란 말이죠. 결국 그만두고 농악을 하던 어르신들 곁으로 갔죠."
한 번씩 그는 그에게 농악을 가르쳐준 어르신들과 함께 풍물을 치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가 따라잡을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된 옛 선배들이라는 것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날아다녔어요. 전국구 에이스라던 팔쇠 김홍엽 어르신, 나발을 잘 불던 오백이 김오동 어르신은 제가 영원히 따라가야할 분들이죠."
'10만 시간의 지혜'를 부탁했을 때 뜻밖에 그가 꺼낸 말은 '창의성'이었다. 농악이라는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그의 입장을 생각했기에 다소 의외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즐기는 자가 체득한 깨달음이었음을 머지않아 알게 됐다.
"선생을 귀찮게 해라.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가르치는 대로 하지 마라.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자기 것이 된다. 배움은 복사하기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수박 겉핥기밖에 안 된다. 모방은 어디까지나 기초 다지기다. 발전은 창조적인 훈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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