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전쟁 '북침설' 또는 '남침유도설'의 기원은 인도 캘커타 대학 카루나카 굽타 교수가 1972년 발표한 '한국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나'라고 한다. 이 책에서 굽타가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국군의 '해주점령설'이다. 그 내용은 황해도 옹진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7연대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해주를 공격해 점령했고, 북한군이 반격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이어받아 북침설을 확산시킨 것이 1980년대 국내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다.
그러나 '해주점령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국군이 해주 공격을 계획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1950년 3월 육군본부가 마련한 '작전명령 제38호'에 의거한 '방어계획'의 일환이었다. 즉 북한이 선제공격할 경우 제17연대가 해주를 공격해 북한군의 주력을 분산시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국군이 이 작전명령을 발동한 시점은 북한이 남침을 감행한 직후였다. 그리고 제17연대는 해주를 공격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국군은 곧바로 궤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파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브루스 커밍스류의 '수정주의'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였다. 하지만 동서 냉전의 종식으로 구소련의 자료가 대거 공개되면서 '수정주의'는 와해됐다. 1994년 6월 2일 고 김영삼 대통령이 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받은 이른바 '옐친 문서'도 그런 자료의 하나다.
소설가 한강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글이 논란을 빚고 있다. 내용 중 다른 부분이야 소설가 자신의 주장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한국전쟁은 강대국이 한반도에서 자행한 대리전이었다'는 대목은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히 짚어야 한다. 6'25전쟁은 강대국의 대리전이 아니다. 스탈린의 사주에 의한 김일성의 남침이다.
이름깨나 있는 소설가라면 이렇게 경박하게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떤 자세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조지 오웰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발표한 모든 글들은 사실상 적어도 두 번을 쓴 것들이며 나의 모든 책들은 세 번씩 썼고, 개별 문장은 5~10번 다시 쓴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는 왜 그렇게 했을까? 양명(揚名)이 아니라 진실을 위해서였다. 그에게 글쓰기는 진실을 향한 준엄한 자기검열이자 자기 수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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