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명절 시즌 개봉 영화 성공 법칙

입력 2017-10-13 00:05:13

남한산성
'범죄도시'
남한산성

약체로 평가받던 '범죄도시' 가족 관람객 취향 저격

대작 '남한산성' '킹스맨' 제압 박스오피스 1위 돌풍

톱스타 출연'제작비 150억'탄탄한 연출 '남한산성'

무거운 내용으로 '가벼운' 작품에 뜻하지 않게 고전

추석과 설 등 긴 연휴가 겹치는 명절 시즌이 되면 영화사들은 각자 준비한 야심작을 극장에 내걸고 관객 동원을 위해 열을 올린다. 이번 추석처럼 연휴 기간이 길어 외국으로 속속 빠져나가는 이들이 많은 때도 있겠지만 어쨌든 쉬는 날이라 관객 수가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대개 신작은 개봉 첫 주말 성적에 따라 스크린 수를 조정하고 앞으로 행보를 결정한다. 긴 시간을 두고 꾸준히 관객을 모으거나 '국가대표'처럼 '역주행'을 하며 흥행에 성공한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첫 주말 관객몰이가 신통치 않으면 스크린을 타 작품에 빼앗기고 향후 행보에 지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주말, 또 연휴 기간의 흥행 성적은 개봉작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그런 이유로 영화사들은 라인업 중에서도 '자신 있는 작품'을 이 기간에 내놓곤 한다. 한편으로 소위 '센 영화'들 간의 전쟁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들이 숨을 쉬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센 영화'만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은 명절 연휴 기간의 특수성에 들어맞는 요소를 갖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 시즌에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범죄도시'다. 애초 잘될 거란 기대도 얻지 못했던 작품이지만 '남한산성'과 '킹스맨: 골든서클' 등 쟁쟁한 블록버스터와 '맞짱'을 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범죄도시', 예상치 못했던 선전

마동석-윤계상 주연의 액션영화 '범죄도시'는 추석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서 3일 개천절에 개봉돼 연휴 마지막 날인 9일까지 220만9천785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관객을 모았다. 8일 일요일부터 '남한산성'과 '킹스맨: 골든서클'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결과적으로 개봉 후 7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며 흥행 가도에 올랐다.

같은 날 개봉된 '남한산성'은 동 기간에 걸쳐 325만4천228명을 모았지만, 개봉 6일 차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범죄도시'에 내주며 2위로 하락했다. 이병헌-김윤석-박해일 등 영화계 톱스타를 캐스팅하고 순제작비만 150억원이 투입된 화제작 '남한산성'이 50억원대 예산이 쓰인 '작은 영화'에 추월당한 건 분명히 굴욕적인 일이다.

개봉일에 600여 개 스크린에서 출발한 '범죄도시'는 연휴 기간을 거치며 상승세를 타고 1천200여 개까지 스크린 수를 확장했다. 1천20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남한산성'은 같은 기간에 100여 개 정도 스크린 수가 줄었다. 약체로 평가받던 '범죄도시'가 극장 측으로부터 흥행파워를 인정받고 본격적으로 '남한산성'과 맞대결하기 위한 링으로 초대받은 셈이다. 하지만, 손익분기점까지 넘긴 데다 '골리앗'을 따라잡아 버린 '범죄도시'의 입장에선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오히려 '남한산성' 측의 허탈감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물량 공세와 화제성이 전부가 아냐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위 수치들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 숫자들은 '범죄도시'가 이번 연휴 기간에 어마어마한 반전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다. 올 추석 연휴 극장가의 경쟁 구도가 '남한산성'과 '킹스맨: 골든서클'의 전면전이 될 것이란 예상을 누구나 할 만했고, 개봉 초반부에는 실제로 그 싸움 안에 '범죄도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범죄도시'에 대한 관객 충성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묵직한 톤의 '남한산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오락적 요소가 많은 '범죄도시' 쪽으로 관객의 발걸음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눈으로 보고 즐기면 되는 단순한 내용, 적당한 유머와 통쾌한 액션이 있는 '범죄도시'가 '오랜만에 극장에나 가볼까' 하고 나선 가족 단위 관객의 취향을 저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내용에 연출력 및 연기 전반에 걸쳐 만듦새에 대한 호평을 듣는 수작인데도 '범죄도시'가 가진 가볍고 경쾌한 재미에 밀리면서 뜻하지 않게 고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범죄도시'의 성공 요인을 단순히 '오락적 재미'에만 초점을 맞춰 따져보는 건 오산이다. '남한산성'이 무거운 톤 때문에 시장에서 불리한 상황에 부닥쳤다고 이분법적으로 평가하는 것 역시 시기상조다. 그것보다 출발선상에서 약세였던 '범죄도시'가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였으며, 특히 극장에서 관람료를 내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 성공했다고 보는 게 맞다.

'범죄도시'는 나쁜 놈 잡으러 다니는 형사의 이야기를 멋 부리지 않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그려내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할 틈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 호감도와 인지도 면에서 상한가를 치는 배우 마동석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형사 역할을 맡아 속 시원한 액션 연기를 보여주고, 또 댄디한 이미지가 강했던 윤계상이 데뷔 후 처음으로 맡은 악역을 그럴싸하게 소화해 균형을 맞춘다. 경찰이 등장하는 영화에 흔히 쓰인 사회 비판 또는 풍자적 요소도 없다. 그저 '철저하게 나쁜 놈'과 '나쁜 놈보다 더 무서운 형사'의 대결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관객은 나쁜 놈들을 묵직한 주먹으로 때려잡는 마동석의 모습에 환호하고 열광하면 된다. 가뜩이나 뭔가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도 않는 세상, 영화 속에서라도 속이 시원해지니 이 정도면 관객으로서 별로 아쉬울 게 없다. 혹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오락영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범죄도시'의 퀄리티는 욕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연휴 기간 관객 심리 악용 사례도

과거에는 뻔한 조폭 코미디를 만들어 명절 연휴 극장가에 내걸고 돈을 챙기던 제작자들이 많았고 그 유치한 전략이 어느 정도 통하기도 했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은 명절 연휴 기간의 특수성을 노려 가벼운 코미디로 표심을 자극하는 저급한 상술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화제작자 정태원은 자신이 만든 히트 브랜드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4편 '가문의 수난'을 직접 연출해 2011년 추석 기간 스크린에 내걸고 236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당시 이 영화는 '초짜 감독'의 어설픈 연출력에 엉성한 각본, 유치하고 황당한 유머 코드가 어우러져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형편없는 졸작이었다. 관람료를 받고 보여준다는 자체가 횡포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가볍게 즐길 만한 영화를 찾던 연휴 기간 관객의 심리를 움직여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다. 이처럼 연휴 기간 표심은 무거운 톤의 영화보다 편안한 즐길 거리가 있는 작품 쪽으로 치우치곤 한다.

지난해 설 연휴 기간에 동시에 상영된 '더 킹'과 '공조'의 맞대결도 '공조'의 승리로 끝났다. '더 킹'은 강한 사회 비판 코드와 연출자의 개인 성향이 드러난 연출 때문에 꽤 괜찮은 만듦새에도 관객과의 접근성이 떨어져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었다. 반면 '공조'는 '더 킹'에 비해 진부한 스토리와 연출이 거슬렸는데도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연휴 기간의 승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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