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는 아직도 찍지 못했다…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특선-이수영

입력 2017-10-10 13:52:06

벌써 12년째다.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끝내고 퇴임을 한지가. 그러니까 내 스스로 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지가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얘기다.

늘 바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모임은 어찌 그리 많아지고, 가야할 곳은 어찌 그리도 많은지, 비행기도 타고, 전국의 온 산을 헤매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서예도 하고, 수필공부도 하고, 컴퓨터도 배우고……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그 바쁜 나날 속에 나는 40여 년을 살았던 교직 생활에 대한 미련에서도 벗어나려고 무척 노력했다.

나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만 18세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는 군대 3년을 다녀온 것 외에는 줄곧 학교에서 살았다. 늘 같은 얘기만 나누는 동료 교사들과 순수한 어린이들 속에서 점점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굳어 갔다.

어쩌다 다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 처음 몇 마디의 인사를 나누고 나면 대화거리가 없었다. 그 첫째 이유가 나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그들은 아예 은근히 나를 왕따 시키고 저희들끼리 뭐라고 쑤근거려도 나는 그들의 대화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져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초등학교 교사는 유치하고 쩨쩨해서 같이 못 놀겠다는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과 어울리려 무한 노력했고 그들이 대화하는 시간에는 줄곧 경청하며 술잔을 비워냈다.

학부형들도 그랬다. 어쩌다 한 번 식사라고 대접 받는 날이면 처음 얼마 동안 아이에 대한 얘기가 끝나면, 저희들끼리 깔깔대며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내가 모르는 애기가 많았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더 그랬다.

그런 일을 몇 번 당하고 나서는 나는 그들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만남은 한사코 거절했다.

교사가 아닌 친구들도 그랬고 학부형들도 그랬다.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말은 공통점이 있었다.

'선생들은 유치하고 쩨쩨하다. 그래서 같이 대화할 상대가 못 된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제 나는 정말로 교사가 되어 가는 모양이구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사가 유치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세심하고 쩨쩨하지 않으면 어찌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부 정치인처럼 손가락질 받아가며 막말이라도 해야 대범한 것인가. 사이비 사업가처럼 자기 이익만을 따지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대하라는 말인가. 조폭들처럼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게 남자다운가?

이상적인 교사는 세심하고 부드럽고 아이들을 배려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 말을 바꾸면 세상 물정 모르는 유치하고 쩨쩨한 그리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야 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은 그런 교사를 존경하고 그런 교사에게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쨌던 교사에 대한 그런 편견이 학교에서 남자 교사 수를 격감시킨 원인의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의 경우 대도시는 여자 교사의 비율이 90퍼센트에 달하고 아이들은 6년 동안 한 번도 남자교사에게 배우지 못하고 졸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은 성역할을 골고루 경험하는 것이 아이들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최근 들어 청소년을 중심으로 남성의 여성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그런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나는 40여년의 교직생활을 보내며, 유치하고 쩨쩨한 선생님들하고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 속에서 그 유치함과 쩨쩨함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왔다.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나는 교단에 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하고 대범해지려고, 쩨쩨함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객기도 부려보고, 생활 패턴을 바꾸어 보려고도 노력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 말과 행동은 오랜 교직생활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습관이 되어 내 것으로 굳어 있음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바뀔 수 없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찍어도 쉼표밖에 될 수 없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혼자 웃었다.

그래, 그렇게 살자. 나의 마침표는 아직도 쉼표에 머물러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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