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만난 기업인들은 앞으로의 선택을 세 마디로 압축했다. 떠나든지, 줄이든지, 접든지. 규모를 늘리는 선택지는 없다고 했다. 기업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새 정부의 공약인 일자리 창출에는 부담이다.
공산 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세금 내는' 일자리를 기업이 만든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 기업인들이 부정적인 선택지만을 들고 고민하게 만들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정부 몫이다. 기업인들의 마음을 먼저 돌려놓지 못한다면 '세금 먹는' 공공일자리를 마중물 삼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새 정부의 발상은 신기루이거나 장애일 뿐이다.
기업이 떠나고 돌아오고는 정부하기에 달렸다. 정부가 하는 짓이 마땅찮으면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은 많고, 돌아오려는 기업은 적다. 무역협회가 중소 수출기업의 해외 생산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해외 생산을 확대하거나 신규 거점을 만들겠다는 기업이 절반(49.1%)에 육박한 반면 국내 생산을 확대하겠다는 기업은 미미(4.7%)했다. 2013년 해외에서 돌아오는 기업을 독려하기 위해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지만 올 상반기 단 2개 기업만 돌아왔다.
주된 이유는 뭘까. 스위스 유니언뱅크(UBS)가 세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조사했더니 139개 조사대상 국가 중 우리나라는 83위로 나타났다. 미국(4위)'일본(21위)'독일(28위)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37위)보다 낮았다. 노동생산성 역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노동시장 유연성 저하와 생산성 감소는 '바늘과 실'이다. 기업은 생산성이 생명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덩달아 일자리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노동계 눈치만 살핀다. 장관급인 노사정위원장엔 민주노총 출신, 고용노동부장관에는 한국노총 출신, 역시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엔 참여연대 출신이 자리해 있다. 지난 정부가 노동계의 온갖 욕을 감수하며 이뤘던 '저성과자 해고 허용'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 노동개혁 양대 지침은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됐다. 이뿐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대폭 인상, 탈원전에 따른 미래전기료 인상 등 기업 활동에 부정적인 온갖 요소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래도 누구 하나 기업을 위해 나설 이 없다. 그나마 재계 이익을 대변하던 전경련은 빈사 상태고, 경총은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 미운털이 박혔다. 반사적으로 노동 귀족층에 대한 과보호는 견고해졌다.
실제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접는 일이 다반사다. 올 2분기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1.6%에 불과했다. 제조업 생산설비 10대 중 3대는 놀리고 있는 셈이다. 제조업만큼 안정적인 일자리 공급원도 없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같은 고용 강국들이 제조업에 힘을 쏟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틀 전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산업부장관을 지냈다. 좌파의 핵심이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근로시간 연장, 해고와 고용 유연화를 위한 노동개혁에 총대를 멨다. 노동개혁안에 반대하는 좌파 정당과 노조를 향해 서슴없이 '게으름뱅이, 냉소주의자,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몰아붙인다. 국익을 앞세워서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1호 정책으로 내세우고도 청년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18년 만의 최악으로 치달았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준비생이 차지하는 비중도 8월 기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세운 3% 성장 목표도 달성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다. 통상임금 후폭풍과 SOC 축소 영향은 아직 현실화되지도 않았다.
문 대통령이 이번 주 일자리 로드맵을 직접 발표할 것이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 기업인들이 '떠나든지, 줄이든지, 접든지'가 아니라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일자리를 만든다. 이번에는 번지수를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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