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블라인드 테스트

입력 2017-07-10 00:05:00

바이올린의 3대 명기로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아마티가 꼽힌다. 이 악기들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레이디 블런트'(Lady Blunt)라고 불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2011년 경매 때 1천590만달러(한화 184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고가의 명기일수록 천상의 소리가 난다고 믿는다. 명기 악기의 제조 기법은 현대 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통념이다.

1977년 영국의 BBC3 라디오가 이에 의문을 갖고 실험을 시도했다. 비교 대상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등 명기 바이올린 3대와 1976년 생산된 영국제 바이올린이었다. 명기와 영국제 바이올린의 가격 차이는 수백 배나 됐다. 아이작 스턴 등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장막 뒤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3명의 전문 바이올리니스트들로 하여금 감별토록 했다. 그러나 4대의 바이올린 중 2대 이상을 알아맞힌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이 외부 정보를 받아들일 때 시각 비중은 70~80%를 차지한다. 보이는 모습과 이미지에 사람은 크든 적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각 정보에서 비롯되는 편견과 선입견을 차단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는 기법이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에 굴욕을 안기기도 했다. 1976년 파리에서는 당대 최고의 와인이라는 프랑스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놓고 평론가들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였다. 당시만 해도 캘리포니아 와인은 그저 그런 보통 와인이었지만, 실험 결과 캘리포니아 와인이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모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평론가들은 경악했으며 이는 미국 타임스에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됐고 세계 와인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우리 사회 청년들에게 공정한 취업 경쟁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정부가 공공 부문에서의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이제 공기업은 사원 모집 때 학력과 신체 조건, 출신 지역, 가족 관계 등 개인 정보를 요구할 수 없게 됐다. 블라인드 채용이 가져올 변화의 바람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 역차별 논란도 없지 않지만, 블라인드 채용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지 오래인 우리 사회의 잘못된 채용 문화를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아울러 브랜드 후광 효과를 거의 신앙처럼 믿는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도 대대적 변화를 부르는 나비효과 날갯짓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