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를 뜻하는 영어 젠틀맨(gentleman)은 유럽의 시민혁명에 대해 공부할 때 나오는 영국의 젠트리(gentry)라는 계급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봉건제하에서 하급 기사들의 후예들로 가장 낮은 귀족 계급이다. 프랑스에서 도시 지역에 살았던 상공업자들인 부르주아(Bourgeois'시민이라는 뜻임) 계급과 마찬가지고 그들은 부를 축적하여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어 낸 주역이었다. 젠트리들은 대체로 청교도들이었기 때문에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예의와 의리를 중시했다. 그래서 사치와 향락에 빠진 런던의 귀족들과는 다른 그들만의 복장과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의 귀족들이 보기에 그들의 문화는 우리나라로 치면 백바지에 백구두 신고 읍내 다방에서 쌍화차나 블랙커피를 마시는(그것도 계란을 띄워서 마시는) 시골 유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중앙의 귀족들이 말하는 젠트리라는 말에는 '시골뜨기'라는 약간의 경멸이 담겨 있었다. 그랬던 것이 시민혁명 후에는 젠트리들의 문화가 귀족들의 문화를 대체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젠틀맨, 영국 신사의 근원은 지방의 문화였다.
우리가 흔히 '지방'이라고 말한 때는 '중부 지방, 낯선 지방'처럼 수식하는 말이 붙는 경우에는 어떤 지역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대신 '지방으로 내려갔다.', '지방 대학'과 같이 수식하는 말이 없는 경우에는 주로 서울 이외의 지역을 의미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사고의 틀 안에서는 '지방으로 발령받았다.'는 '좌천되었다.'와 동격이 될 수 있고, '지방대'는 '수준이 낮은 대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울 중심의 사고이고, '지방'을 '변방'과 같은 의미로 보는 좁은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변방'은 적과 대치하고 있는 국경 지역을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현재는 주로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지역을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다. 변방은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중심지의 문화가 파급되는 시간이 늦어 유행에 한참 뒤처지는 곳이다. 그렇지만 변방과 달리 지방에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지방 나름의 문화가 있으며, 그것은 서울의 문화에 비해 절대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광주가 가지고 있는 저항과 혁신 정신, 대구경북이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전통과 선비정신 같은 것들은 서울이 지방에서 배워야 하는 문화이다.
얼마 전 대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견 출판사인 '학이사' 창사 10주년 기념으로 책의 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기념행사에 참석했었다.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방에서 그 많은 책을 출간해 온 사장님도 대단하고, 책들을 보니 대구에는 무림 고수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도 조금만 자신감을 가지면 대구는 서울의 변방이 아니라 당당한 지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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