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어쩌다 공연장을 찾은 당신에게

입력 2017-06-23 00:05:01

도~미~솔~시~도레도~.

첫 소절부터 귀에 익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 545 1악장 알레그로'이다. 어린 시절 무슨 용기인지 객기였는지 생각 없이 나간 피아노콩쿠르에서 1차 예선 탈락의 치욕만을 남긴, 내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피아노 연주곡. 그 뒤로는 이 곡을 듣기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반사를 경험하고 있다.

연주자로서 나는 낙제였지만, 관객으로서의 내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일찌감치 탈락해 다른 연주자들의 무대를 경건함과 부끄러움으로 본 기억이 생생하니 말이다. 내게 공연무대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긴장감 넘치는 진검승부의 현장이다.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6 문화향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화예술 관람률은 78.3%다. 이 중 영화 관람이 73.3%, 대중음악'연예가 14.6%, 연극'뮤지컬이 13.0% 순으로 나타나 공연장 종사자로서는 안타깝게도 공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지극히 적은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이 공연을 즐기게 할 수 있을까.

공연장을 자주 찾는 사람들의 이유는 뭘까.

어쩌다 공연장을 찾으면서도 클래식 공연 애호가를 자처하는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겉치레로 비칠지언정 남들과는 다른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낭 여행자가 여권을 만들고 캐리어에 짐을 챙겨 넣듯 신문, 뉴스 등에서 관심 가는 연주자가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티케팅 첫날에 몇 끼 밥값 정도의 비용을 아낌없이 쓴다. 공연일까지 연주자에 대해 검색하고, 유튜브에서 프로그램에 있는 곡을 여러 버전으로 들어보는 등 나름의 채비를 한다.

그리고 공연 당일, 가장 어울리는 옷을 차려입고 아직은 공간 넉넉한 주차장에 여유 있게 도착해 연주자가 매력적인 미소로 싱긋 웃는 대형 현수막 앞에서 몇 장의 셀카를 찍어 인증샷을 남긴다. 공연 시작 10분 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름의 고정석인 R석 맨 앞줄 중앙에 앉아 객석의 모든 불이 꺼질 때까지 180여 분의 짧지만 강렬한 즐거움을 기대한다.

원래 예쁜 옷은 조금 끼고, 공연은 영화보다 어렵다. 또 공연장 좌석이 내 집의 소파만큼 편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렵다고 피하고 불편하다고 꺼리면 그 안에 숨은 새로운 경험의 순간들을 놓치게 된다.

공연장을 찾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세세한 차이의 밑바닥에는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며 스스로 인생의 감동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이 숨어 있고, 그 여정이 남들과 조금은 다른 인생을 만든다고 믿는다. 억지로 받은 초대권을 가지고 공연장에 온 것만으로 당신은 편안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포기한 순례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앞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감동의 한순간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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