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선무당 사람 잡기

입력 2017-06-10 00:05:00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고 공청회를 하던 중에 어느 앳된 여고생이 들려준 사례다. 아마도 윤리 시간이었나 보다.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서 인종, 성별, 나이 등에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할 불가침의 권리라고 열심히 설명하신 선생님은, 이 천부인권론을 주장한 사상가가 누구냐고 학생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요구한 정답은 '존 로크'였는데, 하필이면 질문을 받았던 학생이 딴생각을 했는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단다. 이에 열 받은 선생님의 반응은 방금까지 입으로 열심히 설명하던 천부인권의 내용과는 딱 정반대였으니, 냅다 여학생을 후려쳐버린 것이다.

입으로는 열심히 내용을 설명하되, 그것이 실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 아는 바를 실천하는 도덕적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난 촌극이었다.

지식과 윤리적 실천의 이런 부조화가 사회적 정의의 영역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특히 무언가 열성은 지극한데, 지적 발달과 윤리적 성찰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른바 선무당이 되기 십상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면 좋겠다 싶은데, 막상 선무당으로 빙의된 입장에서는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에다 만사가 자기 방식대로만 관철되어야 한다는 독불장군식의 신념이 워낙 단단하게 씌어서 주위의 우려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이를 어려운 용어로는 '더닝-크루거 효과', 쉽게 말하자면 '선무당 사람 잡는 일'이라 부른다. 역사 안에는 이런 열광적인 선무당들이 벌인 잔혹한 흔적들이 심심찮게 존재한다.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혈낭자한 내전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태평천국의 난은 지적 성찰을 빠뜨린 종교적 광기와 권력 추구의 의지가 결합된 예였고, 오늘날 유럽의 도심을 테러로 어지럽히는 극렬 광신주의자들의 난동 또한 비슷한 예일 것이다.

그래서 하버드대학의 윌리엄 페리 같은 이는 일찍이 지적 발달과 윤리적 발달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페리의 연구에 따르면(Perry,W.G.,Forms of intellectual and ethical development in the college years, 1970), 대학생들의 윤리적 발달은 인문교육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신입생의 경우에는 모든 것을 흑백논리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세상일에 불확실성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여러 가지 선택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객관적인 시야를 얻게 된다. 고학년이 되면 자신의 주장과 가치를 환경이나 배경, 조건 같은 다양한 맥락 안에서 따져 볼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정보를 취합해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양심적 결단을 내린 다음, 구체적으로 선택한 바를 책임 있게 수행해가는 것은 지적'윤리적 발달의 최종단계라는 것이 페리의 지적이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이 분명하게 보이고 정답이 선명하게 인식된다고 생각될 때. 그것은 오히려 무지의 소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찰적 지식과 경험, 그리고 책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일의 맥락과 선후, 경중을 따져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누군가에게 흑백이 분명해 보일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은 흑백논리를 주장하는 그 사람의 지적'윤리적 발달이 실망스러운 수준에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윤리적 이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혹시 '윤리와 정의의 잣대에 비춰 보니 이 사람은 절대적인 악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스려 보시라.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고 경중이 있고 맥락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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