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문명을 일구기 시작하며 생활도구로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나무와 돌, 짐승의 뼈 정도였다. 흔한데다 형태와 종류가 다양해 용도에 맞춰서 바로 주워서 쓰면 되었고 이후 지혜를 가지고 조금씩 가공을 시작했다. 이 과정이 고대 인류 문명의 발달경로요, 역사의 진보과정이었다.
약 300만 년 동안 석기 기술은 꾸준히 진화해왔고, 인류 문명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문화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인류의 형질진화 증거가 화석에 있다면 문화진화의 단서는 바로 돌, 석기에 있다. 성춘택 교수(경희대 사학과)의 '석기 고고학'은 바로 이 석기를 분석'가공하는 방법부터 명명(命名), 분류, 분석법까지 고고학 전 범위에 걸쳐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언의 물질에 생명을 불어 넣는 학문=고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고고학은 무언의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학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석기 자료를 분류'분석해 과거 인간행위와 문화변화의 맥락에서 의미 있는 사실을 얻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고고학에서 가장 흔한 자료 가운데 하나인 석기를 바탕으로 선사시대, 특히 한국선사고고학을 연구하는 방법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성 교수는 "석기는 19세기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장할 때 주요 자료였다"며 "현재 고고학의 모든 기초와 성과는 석기에서 쌓아 올린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고고학에서 석기는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과 이해도가 떨어지는 분야다. 우리 학계에 석기에 대한 체계적 분류와 분석을 다룬 책들을 찾기 힘들고, 고고학의 이론과 방법론, 자료의 분석과 해석 같은 기초학문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저술은 한국고고학계의 이런 핸디캡을 크게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선사 자료 체계적 분류, 분석 시도=이 책이 국내외의 다른 어떤 고고학 책과 차별화된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한국의 선사시대 자료를 근간으로 체계적 자료 소개와 분류, 분석 방법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 시대 자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파편적 논문이나 단편적인 저술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고고학 접근방법론에서도 석기를 분류, 분석하는 전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외국 서적이나 논문에 의존해야 했다.
둘째, 이 책이 다루는 대상과 관련한 범위다. 성 교수는 구석기시대에서 시작하여,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자료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흔히 시대적 전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시대를 인위적으로 구획하고 또 문명 간 벽을 세우기도 한다. 저자는 그동안 연구해 왔던 구석기시대뿐 아니라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다양한 석기와 관련한 연구를 한 흐름으로 일별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연구실'대학강의 축적한 경험'지식 종합=이 책은 전공자들을 위한 전문서적으로서의 기능에도 충실하다. 구석기시대 몸돌이 올도완(Oldowan, 뗀석기)-아슐리안(Acheulean, 주먹도끼)-무스테리안(Mousterian, 도구공작)을 거쳐 진화하는 과정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 석기의 돌감을 세분화해 응회암, 흑요석, 혼펠스, 셰일 등으로 분류하고 석기의 재질과 분포를 단서로 고대문명의 해외전파, 이동경로를 추적하기도 한다.
이 책엔 저자가 그동안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이 망라됐다. 저자는 발굴 현장에서,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강의실에서 배우고 느꼈던 학문 지식을 풀어놓았다.
결국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는 한국의 선사시대를 한 흐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개론서요, 전공자'연구원들에게는 각 시기'문명별 고급'전문 이론 갈증을 채워주는 심화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76쪽, 2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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