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호미바다예술제' 자격 없는 작품에 거액 시상금 파문

입력 2017-06-09 00:05:00

지역문인 자존심 밟은 '수상한 1등'

매년 바다의 날(5월 31일)을 즈음해 열리는 경북지역의 대표 문학축제인 '호미바다예술제'가 자격 없는 작품에 거액의 상금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상금을 둘러싼 불법행위가 사실로 드러나면 경찰조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호미바다예술제는 포항시의 보조금(5천500만원)과 포스코 등 지역기업'호미곶등대박물관 등의 협찬금으로 진행된다. 예술제는 흑구문학상을 비롯해 포항문학상'중국 조선족문학상'호미낙조 전국사진공모전 수상작 등을 시상하며 소정의 상금을 수상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꾸려지고 있다.

문제는 가장 큰 규모의 상금이 걸린 흑구문학상을 받은 작품이 이미 발표된 전력이 있다는 것. 흑구문학상 공모 안에 따르면 미발표 수필 3편을 제출하고 심사를 거쳐 1편에 대해 상금 1천만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지만, 지역 작가들은 이번 수상작이 2009년에 발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상작은 '숲, 그 오래전 도서관'으로, 2009년 지역 모 일간지에 같은 작가가 게재한 수필과 제목이 같다. 작가 역시 올해 흑구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숲, 그 오래된 도서관'은 숲 속을 걸어가면서 온갖 종류의 책들을 읽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자연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2009년 실린 수필 내용도 '삐걱, 숲의 문을 떠밀면 꽃과 나무들은 수백만 권 푸른 장서가 된다.(중략) 매일 숲에서 생활하니 독서가 심오할 것이다'며 올해 수상작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해명을 위해 수상작 공개를 요구했지만 작가와 주최 측은 "다른 일정 때문에 8월 이후에나 작품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문인들은 즉각 반발했다. 한 문인은 "지난달 27일 시상식이 끝난 마당에 작품 공개를 미루는 것은 '개작'을 위한 시간벌기에 불과하다"며 "작품 제목과 내용이 워낙 특이해 이번 수상작이 2009년 발표된 내용과 비슷하거나 같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밝힐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인은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고 지역문인 발굴을 위해서라도 포항시 등 돈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관리감독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돈을 지원하는 기관에서는 관리감독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포항시는 보조금이 적절하게 쓰였는지 정산만 할 뿐, 이를 검증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협찬을 한 포스코는 적은 금액이어서 별다른 의미 없이 지원했다고 발을 뺐다.

포항시 관계자는 "호미바다예술제 전반을 지원하는 보조금이어서 문학상 상금 쓰임에 관여할 권한은 없다. 흑구문학상 상금은 포스코 등 기업들이 협찬한 것이어서 포항시와는 상관없다"고 했다.

올해 9회째를 맞은 흑구문학상은 평양 출신으로 1945년 월남한 뒤 1948년부터 포항에 정착해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수필가 흑구 한세광의 족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우리나라의 수필문단을 이끌어갈 문학인 발굴을 위해 지역단체인 호미수회에서 제정한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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