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니?…『라면 완전정복』

입력 2017-05-27 00:05:11

라면 완전정복/ 지영준 지음/ 북레시피 펴냄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을지, 소스를 탕수육에 부어 먹을지를 두고 싸우는 '찍먹파'와 '부먹파'의 대립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논쟁 중 하나가 라면 끓일 때 면을 먼저 넣을지, 수프를 먼저 넣을지다. 물이 다시 끓는 동안 수프 특유의 맛과 향이 사라지므로 면을 먼저 넣어야 한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수프의 염분이 물의 끓는점을 높여 면이 빨리 익고 수프의 향이 면에 잘 배어든다는 과학적인 설명을 깃들인 쪽이 있다. 이 외에도 계란을 풀어서 넣느냐, 넣어 익히느냐에 따라, 면을 그냥 넣느냐, (가로 또는 세로로) 쪼개어 넣느냐에 따라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라면 맛은 물의 양, 익히는 시간, 화력, 공기 또는 찬물과의 접촉 여부나 정도 등에 따라서도 다르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끓여도 다른 맛이 나는 라면의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에 빠진 한 '오타쿠'가 책을 펴냈다. 지은이 지영준은 '라면정복자피키'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며 여러 TV 프로그램과 신문,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해 라면을 소개하는 '라면정복자'다. 팔로어만 해도 3만7천 명이 넘고, 게시물 조회 수가 582만 건이 넘는 인기 블로거이기도 하다. 군 생활 중 당직근무와 함께 접하게 된 다양한 라면에 빠져 '세상의 모든 라면을 먹어보겠다'는 꿈을 키웠던 그가 맛본 라면을 차례로 평가해 소개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세계라면협회(WINA'World Instant Noodles Association)의 2017년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38억3천만 개의 라면이 팔렸다. 중국(385억2천만 개), 인도네시아(130억1천만 개), 일본(56억6천만 개), 베트남(49억2천만 개), 인도(42억7천만 개), 미국(41억 개)에는 못 미치는 기록이지만, 1인당 소비량은 연간 76개로 세계 1위다. 갓난아기부터 꼬부랑 어르신까지 온 국민이 1주일에 1.5개를 먹는다는 얘기다. 이쯤이면 '국민음식'이라 불릴 만하다.

라면이라고 하면 빨간 국물에 꼬불꼬불한 면발, 흩뿌려진 채소 건더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시판 라면은 그 정형성을 벗어던진 지 오래다. 짜장라면, 카레라면, 곰탕면과 같이 소스에 변형을 준 것부터 짬뽕, 칼국수, 우동, 냉면 등을 인스턴트 라면화한 상품까지. 저자가 이 모든 라면을 먹고 나서 쓴 책이 이 책이다. 지은이는 컵라면, 편의점 PB라면을 포함해 출시된 라면을 종류별로 나눠서 특징적인 맛을 비교하고 장'단점을 열거했다. 섞어 먹는 퓨전라면, 군대에서 즐겨 먹는 봉지라면, 부숴 먹는 라면과 같이 먹는 방법도 다양하게 소개했다. 같은 종류인데 국물이 텁텁하다, 더 고소하다, 면발이 탱탱하다 등 라면을 먹고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맛을 상세히 기술했다. 책 후반부 단종된 제품을 포함해 국내에서 판매된 277종의 라면과 32종의 일본 라면에 대한 평점이 매겨져 있다. 가장 높은 평점은 '치즈불닭볶음면'과 '치즈불닭볶음면 뽀글이'(뜨거운 물을 라면 봉지 안에 부어서 요리한 것)이다. 비록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라면 선택에 참고될 만하다.

이 책은 레시피북이 아니다. 라면 맛을 좌우하는 요인이나 다른 블로거의 조리법을 잠깐 소개하긴 하지만, 권장조리법 외에 변형한 조리법, 더 맛있게 먹는 '꿀팁'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유'생강'황태를 넣어 국물맛을 달리하거나, 라이스페이퍼를 넣어 수제비를 먹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간단한 레시피가 언급될 뿐이다. 저자는 라면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라면 속 나트륨 함량(1.5~1.8g)이 WHO(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일일 권장량(2g)에 미치지 못하고, 일본 라면과 비교해도 적다고 한다. 1천원을 훌쩍 뛰어넘는 프리미엄 라면의 출시는 '라면=저렴한 한 끼'라는 선입견도 깨트린다고 말한다.

책은 라면 산업의 성장과 쇠퇴, 인스턴트 라면의 역사, 제조사별 마케팅 스토리에 대해서도 깨알 같은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산, 판매된 라면은 1963년 9월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쌀밥 중심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라면은 낯설었다. 하지만 계속된 홍보와 식량 위기 타개책이 라면시장을 넓혔다.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이 라면시장의 후발주자로 뛰어든 뒤에도 업계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삼양식품은 신제품으로 총력전을 펼친 농심에 1985년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준다. 그 뒤 나온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은 이후 농심의 1위 수성(守城)의 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한동안 잔잔했던 라면 시장에 불이 붙은 것은 2015년 10월 오뚜기가 선보인 '진짬뽕'의 출시다. 1년간 누적판매량 1억7천 개로 라면 시장의 지각변동을 이끌고 있다. AC닐슨 조사에 따르면 농심의 라면 시장 점유율은 2014년 58.9%, 2015년 57.6%, 2016년 53.9%로 해마다 감소했다. 반면, 오뚜기 국내 라면 시장점유율은 2014년 18.3%에서 2015년 20.5%, 지난해 23.2%를 기록했다. '비빔면' '왕뚜껑' 등으로 고정 팬을 확보한 팔도와 '불닭볶음면'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삼양라면도 빼놓을 수 없다.

라면을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백화점식 소개와 간단한 품평에 실망할 수도 있다. 저자와 라면 취향이 다르다면 책을 옆에 놓고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 라면 먹고 갈래요?" 304면,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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