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900회 맞은 '개그콘서트' 명암

입력 2017-05-19 00:05:01

국내 공개 코미디 쇼의 명맥을 이어온 KBS 2TV '개그콘서트'가 900회 특집 방송을 계기로 한차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려 18년에 걸쳐 900회 방송, 국내 방송 역사를 돌아봐도 드문 기록이다. 20% 후반까지 치솟았던 시청률과 함께 영향력을 과시했던 프로그램이라 '900회'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3주에 걸쳐 진행되는 특집방송을 기획했고 그 첫 번째 순서로 '개그콘서트'를 거쳐 간 개그맨들과 함께 역대 인기 코너를 재현해 호응을 얻었다.

14일 전파를 탄 900회 특집 첫 번째 방송은 7%대(닐슨코리아 전국 기준)까지 떨어졌던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을 10%까지 끌어올렸다. 다시 한 번 '개그콘서트'란 타이틀을 환기시키는 기회가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중 일부가 '900회 특집인데 출연이나 인터뷰 요청도 없었다'고 불만을 드러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900회 특집 기획이 끝나고 나면 다시 시청률이 떨어지고 '별 볼일 없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갈 거라는 부정적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900회 특집방송, 성공적 기획 호평

'개그콘서트'의 900회 특집 첫 회는 '감수성' '꺾기도' '씁쓸한 인생' '대화가 필요해' '쉰 밀회' '어르신' 등 과거 인기 코너를 재현해 향수를 자극했다. 현 '개그콘서트'의 맏형인 김준호와 김대희를 필두로 신봉선, 장동민, 김지민, 김준현, 이상호, 이상민, 홍인규 등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1박2일'의 데프콘, 김종민, 정준영도 특별출연했다. 또한, 유재석이 오프닝 무대에 올라 축사를 남기기도 했다. 유재석은 '개그콘서트' 멤버는 아니지만 KBS '대학개그제' 1기 멤버로 데뷔 후 한동안 콩트 연기를 했던 이력이 있다. 공채 시험을 통과하고 '개그콘서트' 무대 진입을 노리는 대다수 KBS 개그맨들의 선배 격으로 900회 특집 무대를 찾았다.

추억의 코너, 그리고 해당 코너에서 연기했던 개그맨들의 복귀는 역시 반가웠다. 당시의 유행어들이 하나씩 터져 나올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폭소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준호가 '꺾기도'에서 "안녕하십니까~불이"를 외칠 때, '어르신' 코너에 등장한 김대희가 "~하면 뭐하겠노. 소고기 사묵겠지"를 내뱉었을 때, '뿜엔터테인먼트'의 김지민이 "제가 할게요. 느낌 아니까"라는 유행어와 함께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때,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도 그 당시의 추억이 오버랩됐을 게 분명하다. '개그콘서트'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자축하며 그 시절을 함께한 시청자들의 감성까지 건드렸다는 점에서 이번 특집은 꽤 볼만한 기획이었다.

◆정종철 등 '개콘' 출신 개그맨 불만 토로

900회 특집이 한 자릿수 시청률과 혹평 속에서 고전하던 '개그콘서트'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알렸던 반면, 일각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슈 파이팅을 먼저 시작한 이는 '마빡이' '갈갈이 삼총사'와 '봉숭아학당'의 옥동자 캐릭터 등으로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개그맨 정종철이었다. 자신의 SNS에 '900회를 축하한다. 하지만, 내게는 이번 특집 준비를 하면서 인터뷰 제안 한 번 안 들어왔다'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특집 무대 본방송에 앞서 제작진이 '개그콘서트-레전드19'라는 다큐멘터리를 준비해 미리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는데, 이때 심현섭-박준형-박성호 등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했던 개그맨들의 인터뷰가 동반됐던 반면 정종철은 인터뷰이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자료 화면을 통해 과거 정종철이 연기한 코너의 영상이 나온 게 전부다.

결국, SNS를 통한 정종철의 발언은 '자료 화면으로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기 코너의 메인 캐릭터로 활동했는데 무대 출연은 고사하고 어떻게 인터뷰 요청도 하지 않을 수 있냐'라는 섭섭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종철 자신도 '레전드라고 소개된 19개 중 9개가 내 코너인데'라며 아쉬워했다.

개인의 심경이 어쨌든 간에 이 발언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했다. 특히나 정종철이 박준형 등 '갈갈이 패밀리'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떠나던 당시 제작진, 또 내부 개그맨들과의 갈등을 겪었던 만큼 '해묵은 감정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이란 추측을 낳을 만했다.

여기에 또 다른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임혁필이 기름을 끼얹으며 논란을 키웠다. 정종철의 글 아래에 '이런 게 하루 이틀이냐. 개콘과 아무 관계없는 유재석만 나오고'라는 댓글을 쓴 게 큰 문제가 됐다. '개그콘서트' 출신이 아님에도 어렵게 시간을 내 무대에 오른 유재석을 걸고넘어지는 게 잘못됐다는 취지의 비난이 쏟아졌다. 아울러 유재석을 두고 '선배'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 잘못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에 임혁필이 'KBS 직속 선배라 어렵긴 하지만 동갑이고 친구인데 그럼에도 선배 호칭을 쓰지 않았다는 게 잘못이라면 사과하겠다'라는 말로 비꼬면서 또 한차례 문제가 됐다.

정종철과 임혁필 외에 900회 특집에 초대받지 못한 김지혜, 정경미 등 개그우먼들도 자신의 SNS에 '자축'의 의미를 담은 글을 올리며 '서운하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개그콘서트' 시스템 변화 시도해야 할 시기

900회 특집이라고 해서 '개그콘서트'를 거쳐 간 수많은 개그맨을 모두 불러들여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정종철이나 임혁필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들이 공개적으로 서운함을 드러낸 건 열심히 '개그콘서트' 무대를 준비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쌓이고 쌓인 갈등의 골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과거 '개그콘서트'가 27%를 넘어서는 시청률로 일요일 밤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떨칠 수 있었던 건 그들 내부에서 만들어낸 혹독한 시스템의 힘이 컸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부작용 때문에 몰락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 '개그콘서트'는 프로그램 자체를 KBS 희극인들의 '주된 업무'로 규정하고 매주 정해진 시간에 따라 아이디어 회의-평가-녹화를 반복했다. 개그맨들도 일반 직장인처럼 출퇴근하고 야근까지 불사하며 '개그콘서트'에 매달렸다. 개그맨들이 만들어온 코너가 제작진의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아예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지 못했고, 혹 공개 녹화에 참여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면 본 방송에서 편집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개그콘서트' 자체의 퀄리티를 높이고자 제작진은 개그맨들의 타 방송사, 타 프로그램 활동에 은근히 제동을 걸고 '하던 일에나 충실해라'고 압박했다. 치열한 경쟁 시스템으로 '개그콘서트'의 퀄리티는 높아졌지만, 제작진과 개그맨들 사이에, 또 개그맨들과 개그맨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개그콘서트'를 통해 이름을 날린 개그맨들이 이탈하는 일도 잦았다.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이래저래 '스타 플레이어'를 잃어버리고 제작진까지 수차례 교체되는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개그콘서트'는 일요일 밤 안방극장의 최강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한때 제작진과 개그맨들이 합심해 강행군을 이어오며 '최강자'의 영광을 누렸지만, 지금은 그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 돼 안타깝다. 지금이야말로 시스템 전반에 변화를 줘야 할 때다. 김준호의 발언처럼 개그맨 역시 가수처럼 아이템 구상 후 활동, 그리고 휴식을 이어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KBS 공채 개그맨들만 데리고 '개그콘서트'를 만들 게 아니라 좋은 아이템을 가진 개그맨 전체를 대상으로 문을 열어주는 방식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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