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다. 아이가 한 놀이기구 앞에 멈춰 섰는데 그 기구를 타려면 자유이용권 구매자도 3천원이라는 별도 이용료를 내야 한다고 했다. 아이 손에 돈을 쥐여주고 줄을 서서 30분을 기다려 앞줄로 가니 옆에서 유심히 보던 아주머니가 와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별도 티켓을 사야 한단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티켓'이라고 쓰인 매점이 눈에 띄는데 주문손님이 밀려 있었다.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막상 차례가 되니 길가 팝콘가게에서만 판매한단다.
황당했지만 급하게 뛰어가 티켓을 사서 아이에게로 가니 이미 아이는 제 차례에 이용권을 내지 못해 대열에서 밀려나 있었다. 놀이기구 아르바이트생에게 하소연하니 "맨 뒤로 가서 서세요"라고 한다. 다시 한 번 부탁을 했지만 "그럼 환불하세요"라는 뚱한 대답이 날아와 꽂힌다. 이쯤 되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미리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든 구입처를 알리는 안내판을 세워놓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큰소리로 항의했다. 아르바이트생은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얼굴을 붉혔다.
겁에 질린 아이의 시선을 의식해 그 자리를 떠나 돌아보니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어리다. 고등학생들인지 아직도 앳된 얼굴이 더위와 몰려드는 사람들로 지쳐 얼룩이 졌다. 땀으로 등이 다 젖은 상태에서도 열심히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여학생도 보이고 그늘 한 점 없이 따가운 햇볕 아래 구부정하게 서서 키를 재는 녀석도 보인다.
순간 맥이 풀린다. 내가 정말 화를 내야 했던 대상은 누구인가. 자유이용권이라는 것은 말뿐, 별도 티켓이 필요한 부스를 곳곳에 설치하고, 이에 관한 안내나 판매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채 어린 청소년들을 제대로 된 서비스 교육이나 불만 고객을 처리할 시스템도 없이 현장에 투입한 회사가 아닌가.
사전을 찾아보니 '갑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란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계속 엄마를 기다리며 옆에 서 있었을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 갑질을 했고, 나 역시 융통성을 발휘하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힘없는 아르바이트생의 고단한 근무에 대한 이해보다는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주는 식으로 갑질을 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을이고 누군가의 갑이다. 나도 상대도 갑질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시스템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것이다. 또 어느 순간에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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