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역사는 474년 동안 이어졌다. 34대 왕이 거쳐 갔다. 918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웠고, 18년 만에 후삼국을 통일했다. 수도는 개경(황해도 개성)으로 정했다. 왕권을 강화하면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 중국과 일본,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과 무역을 했다. 국교로서 불교가 전성기를 맞았다. 11세기 거란족의 침입을 받았고, 12세기 무신정변이 일어나 왕권이 약화됐다. 13세기 몽골족(원나라)의 침입으로 국력이 쇠퇴했다. 왕권이 무너지고 민심이 나빠졌다. 1392년 이성계에 의해 멸망했다.
고려 역사에서 대구경북은 각별했다. 통일의 기틀을 안동전투에서 마련했다. 초조대장경 등 불교가 꽃을 피웠다. 삼국유사와 같은 문화유산을 낳았다. 나라를 뒤흔든 민란도 일어났다. 역사 속 인물도 많이 배출했다. 고려 충신 정몽주와 조선 개국의 전략가 정도전,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 등이 있다. 어린이날이 포함된 '가정의 달' 5월. 가족이 함께 말판놀이를 즐기면서, 고려 역사 속 대구경북을 익혀보자. 지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고, 역사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927년 고려-후백제 '팔공산 전투'
후백제가 팔공산 전투(동수대전)에서 고려에 승리했다.
견훤의 공격을 받은 신라 경애왕은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출발했지만 경주는 이미 견훤의 군대에 점령됐다. 뒤늦게 신라에 도착한 왕건은 팔공산에서 견훤 군사를 맞았다. 병력이 상당했다. 왕건의 병력이 1만5천 명으로 추정되고, 견훤도 그에 못지않았다. 견훤의 기습공격으로, 왕건의 군대는 거의 궤멸했다.
후백제 군대에 포위된 왕건은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때 신숭겸 장군이 나섰다.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입었다. 신숭겸이 왕건으로 위장해 후백제를 유인했다. 결국 신숭겸은 후백제 군대에 의해 전사했다. 그 사이 왕건은 전장을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1087년 초조대장경과 부인사
초조대장경을 완성했다.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로 옮겨 보관하다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탔다.
1087년 고려는 거란 침입을 물리치고자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을 만들었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 등 삼장(三藏)의 불교경전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1011년부터 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해 76년에 걸쳐 완성했고, 송나라의 개보판대장경에 이은 세계 두 번째로 만든 의미가 있다. 1232년 부인사 초조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탔다.
◆1238년 몽골군 침입에 불에 탄 황룡사
몽골군이 침입해 황룡사를 불태웠다.
1238년 몽골군이 경주에 쳐들어왔다. 몽골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기병은 속전속결에 능했고, 잔인했다. 몽골군의 한 부대가 안동과 대구를 거쳐 경주에 도착했다. 황룡사를 지키던 승려들이 항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주를 점령한 몽골군은 곳곳을 불태웠다. 미국 9'11 테러 때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처럼, 황룡사 구층목탑이 화염에 휩싸이며 무너졌다.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때 새로운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나 불사(佛寺)로 바꾸고 황룡사라고 했고, 569년에 완공했다. 규모나 위상에서 신라 제일의 사찰이었고, 당시 사상과 예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컸다. 절의 면적은 약 8만2천600여㎡(2만5천여 평)에 달한다. 주요 건물의 초석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건축 형식을 알 수 있다.
◆1285년 일연 '삼국유사' 완성
일연이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일연은 1277~1281년 청도 운문사에서 머물렀다. 이때부터 삼국유사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1984년 어머니를 모시고 군위 인각사로 들어갔다. 이듬해 삼국유사 편찬을 끝내고, 1289년 84세로 생을 마감했다.
삼국유사의 가치가 크다. 삼국사기에서 누락한 고조선 등 고대사를 살려냈다. 단군신화를 비롯해 신화와 전설을 포함함으로써 한민족의 뿌리와 주체성을 살려냈다. 고대 시가인 향가 14수를 기록해 국문학 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불교 일화와 사상을 기록해 한국 불교의 전통과 발전 과정을 살필 수도 있다. 당시 소문과 전설, 민담 등을 통해 백성의 입장에 사회를 보는 시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361년 공민왕의 안동 피란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남쪽으로 피란해 안동에 이르렀다.
1361년 공민왕은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개경을 떠나 안동으로 왔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내륙분지이고, 해안과 떨어져 있는 안전한 요새였기 때문이다. 피란을 수행한 인물 중에 안동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아서 각종 지원을 받기에도 좋은 조건이었다. 안동은 왕건이 견훤 군대를 물리침으로써 후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기도 했다.
그해 11월 19일 공민왕은 개경을 떠났다. 6일 후 홍건적이 개경을 정복했다. 당시 공민왕은 경기도 이천에 있었다. 눈이 내려 젖은 옷을 불을 피워 말려야 했다. 12월 15일 안동에 이르렀다. 피란에 나선 지 한 달 만이었다. 안동 길목인 풍산 소야천에서 왕비 노국공주가 물살 때문에 건너기 어려웠다. 안동 백성이 엎드려 왕비가 강을 건너게 했다. 안동지역 민속놀이인 '놋다리밟기'의 유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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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은 매일신문(5월 4일 목요일자 16~1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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