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입력 2017-05-01 00:05:00

재수생 강모 군은 입시를 하루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집을 뛰쳐나간다. 강 군은 인근 산에서 실성한 상태로 발견되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 얼마 뒤에는 지원한 학교에 모두 떨어진 이모 군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은 근래의 일이 아니라 1938년 경성(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중학교 입시가 이처럼 과열 양상을 보이자 입시 교육 철폐를 목표로 교과서의 내용을 변형한 응용문제의 출제를 금지하는 법령을 내리게 된다.(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서 만점을 받았다는 말은 이때의 이야기다.) 그러자 암기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입시에서는 만점자가 정원보다 더 많아져서 동점자 처리 기준이 입시의 핵심이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조선총독부에서는 다시 "주입식 교육을 철폐하고 능력 계발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래서 체력장, 구술시험과 같은 방안을 내놓았지만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 체력장과 구술시험 부담만 더 느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변화에 가장 빠르게 해법을 제시하는 곳이 사교육계이므로 사교육이 더 늘어나는 문제도 발생했다.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지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육 정책을 바꾸면 두세 가지 다른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 오늘날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학벌을 결정하고, 학벌은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체제이다 보니 새로운 입시 정책으로 득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교육 정책을 선점하는 자가 정권을 잡는다고 할 정도로 정치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정권을 잡기 위해 만든 정책이 교육계 내부의 난맥상과 만나게 되니까 인문계열 학생의 경우 과학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도 모르고, 법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을 많이 한다. 대부분 '백년을 바라보는 큰 계획'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보수적인 사람들은 교육 정책이 자주 바뀌는 것에 대해 비판할 때 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정치인들은 정책을 바꾸는 것에 대한 근거로 주로 사용한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데 점쟁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백년 앞을 내다보는, 혹은 백년 동안 변하지 않을 안정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역사에서 얻는 가장 분명한 교훈은 백년 동안 쌓여왔던 문제를 두고서는 아무리 큰 그림을 그린다 해도 실효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정권들끼리도 협력해야 하는, 보다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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