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18> 기계정비 명장 김석준

입력 2017-04-25 00:05:24

소리만 듣고도 기계 이상 찾아내는 현대제철 1호 기능장

"해본 일이 많은 기술인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기술인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김석준 명장

현대제철(경북 포항) 기계팀 기장인 기계정비 명장 김석준(57) 씨는 공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현장에 나타난다. 40년 가까이 접한 경험과 노하우로 소리만 듣고도 기계 이상 징후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 멈춰선 기계의 문제점까지 찾아내 작업 현장을 원상 복구시킨다. 제철소의 문제 해결사인 셈이다. 김 명장은 1976년 부산지방기능경기대회 전기용접 부문 최연소 금메달 수상, 현대제철 제1호 기능장이란 명성에 걸맞게 그동안 설비 개선과 부품 국산화로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 왔다. 요즘에는 직업진로 특강, 직업훈련교도소 기술숙련 과정 강의 등 기술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말한다. "해본 일이 많은 기술인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기술인이 돼야 한다"고.

◆선생님도 말렸던 기능인의 길

김 명장은 경북 울진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용접 전문가인 김 명장이 용접에 호기심을 가진 건 중학교 때였다. "등굣길 자전거 수리점에서 가스용접을 봤는데, 쇳물을 이용해 쇠를 잇는 것이 신기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구경했다"며 "그때 본 용접은 새로운 세계였다"고 회고했다.

중학교 졸업 후 부모님 도움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국립부산기계공고 배관과에 진학해 취업이 쉬운 용접을 선택했다. "당시 조선업이 호황이어서 취업이 쉬웠고, 대우도 좋았거든요."

학교생활은 녹록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고 싶어 특활반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담당 선생님은 "너는 적성에 맞지 않으니 다른 공부를 해라. 아니면 관련 자격증이나 따서 조선소에 취직하라"고 충고했다.

선생님 말처럼 용접은 보기와는 달랐다. 소질이 없다고 한탄만 할 수는 없었다. 동료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기술을 연마했다. 마침내 졸업반이던 1976년 부산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전기용접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다. 최연소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전국대회에서는 부정 의혹에 연루돼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국제기능올림픽 출전이 좌절돼 실망했다. 당시 출전만 하면 메달은 보장됐거든요." 그러나 김 명장은 국제대회에서의 금메달 꿈은 좌절됐지만 더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기능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는 실망이 컸지만 밑그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명장은 졸업 후 부산대 공과대학에 취직했다. 낮에는 기계'조선공학과 대학생들의 실습을 도왔고, 밤에는 야간대학(동의공전)을 다녔다.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후 강원도 영월공고의 실기교사로 발령받았다. "3년 정도 근무했는데 지도한 학생 전원이 용접 부문 기능사 자격을 취득했고, 그 가운데 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군대 입대할 나이가 된 김 명장에게 고민이 생겼다. 동생에게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군대에 가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잖아요."

◆ 제철소 어디선가 일이 생기면 그가 나타난다

김 명장은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병역 혜택이 있는 현대제철(당시 강원산업)에 입사했다. 학생을 가르쳤던 김 명장에게 기업체에서의 일은 고되고 힘들었다. 고열에 분진 등 근무 환경도 열악했다. 무엇보다 현장 일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는 달랐다. 기계정비를 하려면 용접과 절단은 기본이고 금속재료, 기계제도, 유공압 등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일이 가능했다. 용접의 영역을 뛰어넘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김 명장은 전공 서적을 구입해 이론을 배우는 등 기술의 전 과정을 익혀 나갔다.

한번은 분임경진대회에서 김 명장이 발표자를 대신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가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아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해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못 했거든요." 오기가 발동했다. 이후부터는 자신이 직접 준비하고 발표했는데, 사내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최다 수상할 정도로 나갔다 하면 일등을 도맡아 했다.

김 명장은 현장이 필요로 하는 전문 기술인이 되기 위해 연구하고 기술을 배우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능장에 도전했다. 당시에는 기능대학을 졸업해야만 기능장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김 명장은 포항을 떠나 창원에서 대학을 다녔다. 마침내 기능장을 취득했다. 현대제철 기능장 제1호였다.

이후 김 명장은 윤활유 관리와 자동결속기, 디스켈러, 유니버셜 조인트를 전담하는 일을 맡는다. '기술은 공유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김 명장은 자신이 담당하는 파트의 설비를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었다. 또 고압을 취급하는 디스켈러 설비의 배관과 특수강의 보수용접을 도맡아 하면서 설비의 가동률을 높여 원가절감과 품질 향상을 이뤄냈다. 또한 윤활유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 감속기의 수명을 연장시켜 윤활로 인한 고장을 사전에 막았다. 이처럼 김 명장은 관련 기술이라면 무엇이든 배워 현장에 적용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사내에 산소공장을 신설할 때 컴프레서와 연결되는 진동이 심한 배관 부위에 용접 결함이 발생해 시운전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때 김 명장은 현장에서 뛰어들어 직접 용접을 하는 등 즉각 조처로 감독관의 검사를 통과해 정상 가동시켰다.

이처럼 김 명장은 5분 대기조이다. 어디서건 부르면 달려간다.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고 있는데, 일을 하다 미처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있어 자주 휴대폰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김 명장은 특허와 실용신안은 물론 회사에 제안해 채택된 것만 3천 건이 넘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많다. 옷, 장갑 등이 쉽게 말려들어 갈 수 있는 기계의 체인 부분을 덮는 안전덮개를 기존 무거운 철제 박스에서 가볍고 설치가 간편한 파이프형으로, 미끄러운 철제 통로를 벌집 형태의 망으로 바꾼 것 또한 그의 아이디어다. 품질분임조 활동에도 앞장서 공정 개선을 통해 원가절감과 생산성을 높인 공로로 2001년에는 품질관리의 달인으로 불리는 '국가 품질 명장'으로 선정됐으며, 2011년에는 산업포장을 받았다. 마침내 2014년 '기능 한국인'에 이어 '대한민국 기계정비 명장'에 선정됐다.

◆"기술은 나누고 공유해야"

김 명장에게 40여 년은 늘 '배움의 연속'이었다. 현장에서 생긴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했다. 지금은 그 배움을 더 많이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현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후배들이 전문 기능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밀어줄 생각"이라면서 "배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기술인도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하는 김 명장은 그러나 "기술은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매뉴얼을 만들었고, 또 다른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김 명장은 기능경기대회 심사, 산업현장 교수, 직업진로 특강, 직업훈련교도소 강의, 기업 컨설팅에도 적극적이다. "강연 및 기능 전수 사업을 통해 유능한 기능인 양성과 함께 작은 기업에도 유능한 인재가 많이 근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기술력을 전수할 것"이라며 "베풀면 더 큰 보람이 온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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