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처음으로 TV토론이 도입된 것은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였다. 신예인 케네디가 TV토론에서 화려한 경력의 닉슨을 압도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둔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당시 TV토론은 모두 4차례 열렸는데 그해 9월 26일의 첫 번째 토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초로 열리는 TV토론에 무려 7천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봤을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몇 시간 전까지 선거운동을 하다 허겁지겁 달려온 닉슨은 토론회 내내 불안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고 식은땀까지 흘렸다. 화장도 거부해 깎지 않은 턱수염까지 고스란히 TV 화면에 나오는 바람에 피곤하고 무기력하다는 인상을 줬다. 반면, 케네디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또박또박 말해 강하고 똑똑하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재미있는 것은 이 토론회가 라디오와 TV로 동시에 중계됐는데, 라디오와 TV를 이용한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달랐다는 점이다. 라디오를 청취한 사람들은 닉슨이 우세하거나 비슷했다고 생각한 반면, TV를 시청한 사람들은 케네디의 압승이라고 여겼다. 이때부터 미국 특유의 '이미지 정치'가 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후보의 비전과 공약보다는 TV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나 감성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됐다.
한국에는 1995년 지방선거 때부터 TV토론회가 본격화됐지만, 재미없는 토론 방식과 과다한 토론자 수로 인해 후보의 자질과 기량을 제대로 꿰뚫어보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두 차례 열린 TV토론에 무려 5명의 후보가 등장해 토론하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공화'민주당 후보 두 명만 나오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는 여러 후보가 서로 물고 늘어지는 난삽한 모습을 보여주니 제대로 된 검증이나 자질 비교는 불가능하다.
지지율 5% 미만 후보까지 한자리에서 토론하는 것은 한국만의 풍경이다. 선관위나 방송국이 군소 후보 측의 항의나 비판을 의식해 참석 대상을 늘리는 바람에 시청자의 눈만 혼란스럽게 한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일대일 맞짱 토론을 하든지, 아니면 홍준표 후보까지 더해 3명 정도가 적정하다. TV토론을 잘한 후보가 당선과 거리가 있는 듯한 유승민'심상정 후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본말이 뒤바뀐 모습이다. 남은 4차례의 TV토론에서도 또다시 난삽한 꼴을 봐야 한다니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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