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몸의 일기

입력 2017-04-18 00:05:05

"오늘은 오전에 현미에 무채가 들어간 무침, 호박전을 먹었다. 점심엔 커피를 한잔했다. 오늘 아이 생일이라 뷔페에 갔다. 스테이크를 먹고, 스시는 밥을 거의 다 덜어내고 먹었다. 방울토마토를 30개는 족히 먹은 것 같다. 뷔페에 가니 본전 생각이 나 좀 과하게 먹었다. 토해낼까 하다가 아이 생일날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아 그만뒀다. 러닝머신 40분. 라디오를 들었다. 지루했다." 2016년 3월 9일.

비만 때문에 건강이 많이 나빠진 이후로 나는 내 몸과 관련된 주제로만 일기를 써오고 있다. 누굴 만났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대신 뭘 먹고 얼마나 걸었는지, 어디에 욕망을 느꼈고, 체중은 어떤지에 대해 쓴다. 하지만 단순한 건강일지라고 할 순 없다. 건강만을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물질적 기반인 몸에만 집중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다니엘 페나크가 쓴 '몸의 일기'를 읽은 직후였다. 소설가인 사무엘 베케트는 일기 쓰기란 그저 우리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일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일기는 허구이지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여기서 그가 염두에 둔 일기는 어디까지나 정신의 변화를 기록하는 '내면 일기'다. 그러나 페나크가 쓴 몸의 일기에는 우리가 '내면 일기'를 쓸 때 자주 하게 되는 기억에 대한 낭만적인 미화나 자기 판단에 대한 합리화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건강염려증, 동성애, 구토, 티눈, 성불능, 자위, 똥의 모양, 치매, 코파기를 그림처럼 묘사하는 일기에 어떤 미화가 개입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이유로 몸에 대한 일기는 내면 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보다 더 내밀한 기록이 된다. 페나크는 열 살 무렵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에 혼자 숲에 버려져 바지에 똥을 쌀 정도로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 이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우주의 별을 관찰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에 대해 썼다.

내가 쓰는 일기도 내면 일기가 아니다. 손톱을 뜯는 습관, 팔뚝에 난 지방 뾰루지, 피부 각질과 체취, 구토 등 나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던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동안 내가 일기에서조차 나 자신을 자주 속여 왔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약해지고, 늙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부족한 매력과 능력을 포장하려고. 페나크는 87세 19일,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래, 나의 도도, 이젠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겁먹지 마, 너도 데려가 줄게." 그의 일기는 두려움에서 시작했지만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난다.

어쩌면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이 있다면 두려움에서 결국 벗어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여전히 두렵지만, 이제 더 이상 손톱은 뜯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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